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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설사

김종헌(아동문학가)
등록일 2015-05-28 02:01 게재일 2015-05-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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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학 강연회에서 월북 아동문학가 윤복진에 대해서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어떤 청중이 질문을 했다. 윤복진은 월북했는데, 그 사상을 검토하지도 않고 작품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면 곤란하지 않느냐고. 그래서 일제 강점기 남한에서의 문단 활동과 월북이전의 작품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았냐고 답을 했다. 그래도 그는 월북동기를 따져야 하고, 월북이후 친북 성향의 활동까지 포함시켜 판단해야 한다며 목청을 높였다.

언쟁이랄 것도 못되지만, 그 사람과 불쾌한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설사를 떠올렸다. 이른바 설사는 내 몸 안에 들어온 음식이 소화를 못할 때 생기는 `배탈`이다. 아랫배가 살살 도는 게 이마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로 괴롭다. 이 청중은 지금 `지식의 설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식의 설사는 머리에 들어온 정보를 충분히 곰삭히지 못한 채, 과시욕을 부리며 들어온 말을 자기방식대로 내뱉는 `뇌탈`이다. 그는 자기의 문학적 소견이 넓은 것을 과시하듯이 몇몇 유명시인의 시를 줄줄 외워가며, 누구는 어떻고 또 누구는 친일을 했으니 반역이라고 했다.

설사는 장 속에서 흡수가 안 되는 물질에 의해서 발생되기도 하지만, 염증 등 장 질환에 의한 경우도 있다. 마찬가지로 지식의 설사도 두뇌가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의 어려운 용어들이 들어와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주장 등 이데올로기적인 증상인 경우도 있다. 설사에 대한 처방은 약물로도 가능하지만, 끼니를 굶고 따뜻한 보리차 등으로 장을 달래주면 된다. 지식의 설사도 마찬가지다. 현학적인 용어를 받아들이지 말고, 지금까지 들어온 정보나 개념 등을 차분히 곰삭히는 사색의 시간을 가져서 뇌를 달래주면 된다.

소화가 덜 된 음식의 설사는 구린내를 풍기기는 하지만 본인 혼자만 괴롭다. 그러나 지식의 설사는 주변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정작 본인은 즐겁다. 최근 각종 문화강좌가 확대되면서 강사도 청중도 뇌탈현상이 자주 나타나는 것 같다. 오늘 내 강연이 지식의 설사는 아니었는지, 그 청중을 보며 돌이켜본다.

/김종헌(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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