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은 각양의 사람들이 마주하는 공간이다. 때로 정감이 가는 사람들도 만난다. 그중 산에 비견되는 풍도(風度)를 갖춘, 80대 초반 신사 할아버지와 명랑 할머니를 만났다. 인사말을 건넬 때마다 할아버지는 절도 있는 거수경례로, 검은빛 선글라스를 낀 할머니는 두 옥타브쯤 높은 톤으로 답례를 한다. 산새들이 후드득 날아가고 “안·녕·하·세·요!….” 한껏 높아진 할머니의 고성은 작은 파편 조각으로 흩어져 산자락 바위 절벽에 콕콕 들어박힌다.
편부 슬하 스물여섯 살 청년이다. 대학생인 그는 학비 충당을 위해 방학 때마다 공장에서 일을 한다. 그와 저녁을 함께 했다. 3일 휴가를 받아서 행복하다는 그는 명절 때마다 친가와 외가 할머니에게 용돈과 선물을 잊지 않는다. 고된 일을 하다 보니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발심이 든다며, 이십 대의 나이를 부모에게 기댈 나이가 아닌 부모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해야 될 나이라고 했다.
경제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다. 특히 젊은이들이 힘든 시절이다. 비정규직과 파트타임을 전전하는 갓 서른의 여성으로 다시 백수가 된지 한 달여 가까이 된다. 그럼에도 그는 오륙 년째 매달 삼사만 원을 불우 이웃 돕기에 희사해 오고 있다.
일상이 도(道)라는 말이 있다. 중국 명(明)시대 왕간(王艮)의 “백성일용즉도(百姓日用卽道)”라는 말과 맥을 같이한다. 그렇다. 도란 산속에 홀로 떨어져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아침에 잠을 깨어 다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의 일상 속에 도가 있는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 국회(國會)스러운 사람들을 제외해 보면 ― 대한민국은 알게 모르게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도인(道人)들이 모여 사는 나라다.
/眞易 전병덕(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