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인 안동장씨는 시 6편, 맹호도 1점, 초서 1점, 서간문 1점을 겨우 남겼다. 누군가가 가져가 보관하는 바람에 `화`를 면했을 것이다. 그 중 `학발가`시 한 편을 쓴 초서가 전해져서 그녀의 재능과 사상을 알수 있게 되었다. 학발가는 늙은 어머니가 아들을 징병에 보내고 애타하는 정경을 읊었는데, “백발 늙은이가 병을 지니고 있으니/서산에 지는 해처럼 생명이 위태하네/두 손바닥을 마주 대고 하늘에 빌었으나/하늘은 어찌 그리 무심한고”란 귀절도 있다. “창밖에는 소슬한 빗소리/자연의 소리 듣고 있으니/나 또한 자연으로 돌아가네”란 귀절을 보면 그녀는 노·장류의 자연사상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안동 장씨는 10남매를 두었는데, 아들 갈암 이현일이 정2품 이조판서에 제수되면서 정부인(貞夫人)으로 추증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가혹한 세월을 살았다. 광해군시절과 인조반정과 병자호란과 삼정도 치욕의 역사를 살아가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감추며 숨죽이고 살았다. 그러나 70세가 되던 해 그녀는 필생의 사업을 시작하는데, 바로 우리 전통음식을 담아낸 `음식디미방`을 쓰는 일이었다. 146가지의 음식의 조리과정을 세세히 순 한글로 적었는데, 원본은 잘 보관하고 시집가는 딸들과 며느리들은 이를 베껴써서 사용했다. 그래서 그 많은 전란중에도 이 책이 살아남았다.
음식디미방에는 정부인의 음식철학이 담겨 있다. 자연속에서 재료를 찾았던 것이다. 뜰에 핀 꽃과 잎이 활용되었고, 순수한 음식의 맛을 살리기 위해 과도한 양념을 금했다. “식품이 곧 약품”이란 말처럼 그녀의 음식은 곧바로 건강식품이었다. 그래서 책이름도 `음식의 맛을 제대로 아는 방법(飮食知味方)`이라 붙인 것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 최초의 음식백과사전이라는 특별한 의미도 지닌다.
영양군(군수 권영택)은 구글과 손잡고 음식디미방과 영양군 두들마을 홍보에 나섰다. 최근 열린 홈페이지 공식제작 발표회에는 40여 개 언론사들이 모여들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군은 경북도와 함께 음식디미방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할 절차를 밟기로 했다. 한식이 세계 명품음식으로 부상될 날도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