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라는 종교 단체가 있다. 2003년 이들은 “감춰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1987년 대한항공 폭파 사건의 “김현희는 가짜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후 온갖 매체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6개월여 동안 온 나라를 들쑤셔 놓았다. 그러나 2005년 국정원 과거진상규명위원회와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에서 이들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으로 판명 났지만 지금까지 누구 한 사람 사죄한 적이 없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더욱 가관이다. 역사 왜곡이나 독도 영유권 주장 등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현 정부 들어 그 정도를 넘어섰다. `국화와 칼`이라는 책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미국의 문화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쓴 일본 연구서다. 저자는 일본인의 모순적인 이중성을 부각시키면서 한 손에는 평화라는 국화를, 한 손에는 전쟁이라는 칼을 쥐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그들이 들고 있는 것은 국화와 칼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논리와 노예근성이다.
“모르고 짓는 죄가 더 크다”는 말이 있다. 불교 경전 해설서인 `Milinda王問經`에 나오는 말이다. 죄를 알고 행하는 사람은 망설임과 뉘우침의 여지가 있으나, 죄를 모르고 행하는 사람은 잘못을 끊임없이 반복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벌겋게 달아오른 쇠붙이를 예로 들었는데 일면 타당한 것 같으면서도 수긍할 수 없는 괴리가 숨어 있다.
시절이 달라진 것일까.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세상 모두가 아는 잘못을, 저 혼자 아니라고 우겨대며 꾸역꾸역 죄를 더해가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원전 2세기 후반, 서북 인도에서 불교에 대한 문답을 주고받은 `미린다왕`과 `나가세나 존자`는 분명 21세기의 한국과 일본이라는 나라의 존재를 몰랐음에 틀림없다.
/전병덕(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