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을 뻘뻘 흘리며 젖을 먹고 난 후 아기는 곤히 잠든다. 성가시게 굴던 일을 금방 잊어버리고 깨워서 놀고 싶어진다. 뿅뿅 소리 나는 신발을 신고서 통통한 엉덩이를 뒤뚱거리는 걸음걸이, 유치원 간다고 집을 나설 때 꽃잎처럼 팔랑거리며 흔드는 조그맣고 하얀 손, 온 놀이터의 모래를 다 실어 나를 듯 현관 바닥을 어지럽히던 번잡함도 잠시, 어느새 쑥쑥 키가 자라는 아이들, 세상 어떤 것이 이처럼 순하고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보신 분 연락바랍니다. 사례하겠습니다.` 며칠 전 나들이 다녀오는 길에서 본 현수막이다. 인상착의를 보여주는 사진 속 주인공은 강아지였다. 옆자리의 친구는 “개 꼬라지하고는….”하면서 못마땅한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강아지가 인간에게 주는 정서적 안정은 반려견이라는 품위 격상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단순히 집과 먹이를 제공해주고 바라보는 만족이 아니라, 사랑과 위로 등 그들의 가치를 재인식한 것이다. 당연히 찾아나서야 할 일인데, 왜 무던한 내 친구의 심사를 뒤틀리게 한 것일까.
OECD 국가이면서 해외 입양을 보내는 나라라는 오명은 어쩔 것이냐며 친구는 말머리를 돌린다. 그 책임이 오롯이 내게 있는 듯 친구는 목소리를 높이고 나는 부끄럽고 미안해진다. 버려지는 아이의 수는 늘어나고 입양에 대한 사회적 편견 또한 여전히 만만찮다고 한다. 자신의 선택과는 전혀 무관하게 유기되고, 자신의 행복을 오로지 타인에게서 기대해야 하는 아이들, 허기진 세상 곳곳에 엄마를 심고 싶다는 책 속 한 구절이 생각난다. 무엇보다 부모가 제 손으로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찾아보기로 한다. 가정의 달 5월, 지난 11일은 입양의 날이었다.
/윤은현(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