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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김종헌(아동문학가)
등록일 2015-05-14 02:01 게재일 2015-05-1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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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시집을 한 권 냈다. 출판사가 책값을 정했는데, 내가 들인 공과 창작에 걸린 시간 등은 전혀 고려치 않고 1만원으로 정했단다. 왜 이렇게 했느냐고 물으니까 `그냥` 대체로 이정도 가격으로 한단다. 시집 한 권의 값이 너무 비싸면 독자가 외면할 것이고, 또 이보다 싸면 좀 그렇고…. 출판업자의 답변이다.

그렇다. 책값이 수요공급의 원칙과 경제학적인 법칙에 따라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정해지듯이 우리는 지금 객관성을 결여한 채 살아가고 있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현대인은 자기가 서 있는 자리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있다. 정치도 사회문화적 현상도 그냥 보고 있다.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다.

언제부터인가 TV에서 아기를 출연시킨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다. `삼둥이, 쌍둥이`들이 인기를 얻고 난 이후에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는 연예인들이 자기 자식을 데리고 나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시청자들은 그냥보고 있다. 그 아이들이 특별한 끼나 재주를 가진 것이 아닌데도, 그냥 누구의 아들딸이라는 사실만으로 출연을 하는데도 말이다.

그런가 하면 한편에서는 연예인이 되기 위해서 치열하게 오디션을 보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대학에서 아니면 학원에서 그들의 끼를 찾아 보여주기 위해서 수 년 간에 걸쳐 땀을 흘린다. 그리고 눈물도 흘린다. 그런데도 유명 연예인의 아이들은 그냥 출연한다. 이들이 가지는 프리미엄은 가격으로 계산할 수 없다. `특실`의 자리에 무임승차하는 격이다. 그리고는 거기에 주어진 온갖 혜택을 누린다. 나는 그냥 걱정이다. 이들에게서 `갑 의식`이 싹 틀까봐.

각종 부정과 비리 의혹에 휩싸인 정치인들이 그냥 버틴다. 민생관련 법안이나 비정규직 관련 법안이 국회에 그냥 쌓여있단다.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들고 뜻도 모를 매체언어를 남발하면서도 그냥 재미있단다. 이렇게 우리는 그냥 서 있다. 버스 정류장을 그냥 통과하는 시내버스도 그냥 두고 봐야 할 것인지 `그냥` 한번 생각해 봤다.

/김종헌(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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