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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대해

이상형(철학박사)
등록일 2015-05-12 02:01 게재일 2015-05-1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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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몸이 바쁜 것만큼이나 마음까지 덩달아 바쁜 날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많은 날들을 기념하게 되었을까? 이렇게라도 정해놓지 않으면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우리는 살면서 그만큼 많은 것을 잊고 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기억은 어쩌면 각자가 마음대로 만들어낸 이야기일 수 있다.

예전 미국에서 기억에 관한 실험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14세 소년을 모아 인터뷰를 한 후 34년이 지나고 그때의 일을 기억하게 했다.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그들이 기억한 10대의 일과 그 당시 기록이 일치하지 않았다. 부모와 사이가 매우 좋았다고 기억한 이는 실제로 10대에는 부모와 갈등이 많았다고 기록했었다. 또한 10대에 외향적이었다고 기억한 이의 기록에는 자신을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다고 적었다. 왜 이럴까? 기억에 현재가 끼어들기 때문이다. 모든 기억은 통째로 저장되지 않고 조각으로 분류돼 저장되며 현재의 필요에 따라 짜 맞추어 끄집어낸다. 그렇다면 기억은 현재의 내가 나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기억을 들추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과거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내가 살았던 순간과 내가 경험한 것은 오로지 나의 기억 속에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내가 점차 그 때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나의 삶의 일부분이 사라지는 것이다. 내 삶의 흔적들은 나의 기억이 사라지면서 서서히 이 세계에서도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전 친구들을 만나면 끊임없이 기억을 회상하려 한다. 같은 추억을 공유한 사람들과 그 순간을 기억함으로써 내가 살았음을 확인받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지금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다. 또는 어떤 이는 지금 이 순간이 빨리 지나길 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두가 이 세상에 내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모든 이가 자신의 과거를 따뜻하게 기억할 수는 없을까?

/이상형(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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