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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북

서동훈(칼럼니스트)
등록일 2015-04-28 02:01 게재일 2015-04-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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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는 태어날 때 이미 성인급 두뇌를 가졌고, 처음 세상을 보는 순간 “아차! 잘못된 시절에 태어났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어머니의 자궁속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이미 탯줄이 잘려서 포기하고, 살아보기로 한다. 어머니가 “3살이 되면 양철북을 사주마”라고 약속했기 때문에 더 용기를 냈다. 세살이 되던 해 양철북을 받았지만, 세상의 부조리를 더 알게되었다. 어머니의 불륜을 목격하면서 더 절망하고, “지금부터 나는 더 이상 자라지 않겠다” 며, 지하실에 굴러 떨어져 크게 다치면서 `성장판`이 닫혔다.

오스카는 부조리를 볼때 마다 쇠소리를 지르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날카로운지 유리창이 깨어졌다. 나치군대가 행진을 할 때 따라다니면서 양철북을 쳐댔고, 행진곡은 엉망이 되고, 행렬도 흐트러졌다. 히틀러가 오스카의 고향마을에 와서 선전선동 연설을 할때마다 양철북을 쳐서 연설을 망쳐버렸다. 그러나 세살짜리 젖먹이가 하는 짓이라 잡혀가지는 않았다. 무슨짓을 해도 면책이 되기 때문에는 3살짜리로 머물러 있기로 했던 것.

귄터 그라스(1927~2015)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소설 `양철북`의 줄거리다. 그는 1차대전후에 태어나 청년기에 2차대전을 겪는 불우한 세월을 살았다. 두 차례나 패전한 독일에서 살았던 작가는 “전후의 부조리와 모순과 갈등과 빈곤을 이렇게 상징적으로 절실히 그린 소설은 없었다”란 평가를 받았으며, `양심의 상징`이란 소리도 들었다. 사실 그는 독일의 양심이었다. 그는 회고록에서 “나는 17세때 나치 친위대에서 복무했던 적이 있다”라고 고백했다. 맞아죽을 일이었지만 그는 양심을 선택했다. “나는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가지면 세계평화를 위협한다고 외치고 싶었지만, 반유대주의자로 찍힐까봐 입을 닫는 비겁한 인간이었다”란 자백까지 했다.

우리에게도 이런 양심(良心)이 필요하다. 같이 죽자며 `물귀신 리스트`를 남기고, 태연히 거짓말을 늘어놓고, 뭣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우리의 현실이 `양철북 소리`를 간절히 기다린다.

/서동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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