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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별곡(霜臺別曲)

서동훈(칼럼니스트)
등록일 2015-04-21 02:01 게재일 2015-04-2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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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에 벼슬길에 올랐다가, 친원파·친명파 갈등 속에서 한때 유배를 당하기도 했지만, 세종대왕이 그의 인품을 알아보고 대사헌을 맡겼던 양촌 권근. 그가 지은 `상대별곡`은 사헌부의 위세를 잘 보여준다. 검찰과 감사원을 겸하고, 언론기능까지 있어서, 왕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사정 없이 탄핵했던 사헌부. 그래서 서리상(霜)자를 쓰서 상대(霜臺)라 불렀다. 비록 왕족이라도 비리가 드러나면, 그 죄목을 판자에 써서 가시더미와 함께 그 집 대문앞에 세워놓았다.

우두머리 대사헌이 부임하는 날에는 모든 관원들이 도열해서 예로 맞이하게 돼 있는데, 흠결이 있는 자를 왕이 총애해서 낙하산 임명을 했다면, 취임하는 날 관원들은 도열해 맞지 않고 자리에 앉은 채 본 척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는 자리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코를 쥐고 돌아가는데, 그러면 왕이 직접 사헌부에 와서 통사정을 할 정도였다. 탄핵당한 왕족을 좀 봐달라고 왕이 대사헌을 은밀히 불러 당부를 하는 일도 있었지만, 대사헌은 “그렇게 하면 관원들이 소신을 탄핵할 것입니다”라며 거절한다.

이런 서릿발 같은 기관이라, 사헌부 관리들의 몸가짐은 어느 관원보다 엄했다. 의관은 늘 추레하고, 얼굴은 영양실조로 파리했지만, 그 기상은 어느 누구보다 당당했다.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등 3사는 청요직(淸要職)이라 불렸고, 이런 기관에 등용된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알았다. 그만큼 출세길도 빨랐으며, 정승 판서에 오르려면 적어도 청요직을 거치는 것이 `필수 엘리트 코스`였다.

`성완종 리스트`가 정·관계의 핵폭탄이 되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유병언의 돈 안 먹은 자 있냐”란 소리가 나오더니 올 4월에는 “성완종 돈 안 받은 자 있냐”란 말이 들린다. 힘깨나 쓰는 자 치고 그의 `밥` 안 먹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는 `정경유착의 귀재`였다고 한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두번씩이나 특별사면을 받았으니, `로비 일기`가 썩은 곳을 다 들춰낼 것이다. 검찰이 이번에 `사헌부정신`을 제대로 발휘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서동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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