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공포증`을 이기지 못해 우물에 뛰어들어 자살시도까지 했고, 사람 발자욱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뛰고 혼절할 지경까지 되었다. 어릴때부터 동궁에서 홀로 생활하는 동안 폐쇄공포증에 걸렸고,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궁궐을 떠나 지방으로 가면 안도감에 병세가 많이 호전되는데, 한 번은 궁궐 담을 뛰어넘어 평양까지 놀러갔다 와서 대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니 영조의 질책은 더 혹독해져갔고, 궁궐내에서는 “세자가 부왕을 죽이려 한다”라는 흉훙한 소문이 돌았고, 그 말이 영조의 귀에 들어가면서, 마침내 세자를 뒤주속에 가둬 죽인다.
당시 내의원(內醫院)에는 `정신신경과`라는 진료과목이 없었으니, 우울증에 대한 전문적인 진단과 치료를 할 수도 없었다. 영조도 그때 70세이니 망령이 들 나이도 됐고, 항우울증 치료제도 없던 시절이라, 세자의 우울증은 치료가 불가능했다. 이것이 `우울증이 낳은 왕실 비극`에 대한 첫 공식기록이다.
우울증은 자신의 불행뿐 아니라 남의 생명까지 희생시킨다. 독일의 한 항공사 부기장이 150 명을 태운 항공기를 알프스산맥 근처에 고의로 추락시켰다. 혼자 자살하지 않고 남들과 죽음길에 동행한 것. 기장이 화장실에 간 사이에 문을 안으로 잠그고 결행한 동반자살 행각이었다. 그는 우울증 치료를 해왔고, 최근에는 `근무에 지장 없음`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우울증을 단순히 `마음의 감기`로 가볍게 볼 병이 아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병이니, 많은 생명을 책임지는 업무 종사자들에 대한 정신과적 진료를 강화해야 한다.
/서동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