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갈잎 먹은 송충이

서동훈(칼럼니스트)
등록일 2015-04-13 02:01 게재일 2015-04-13 19면
스크랩버튼
신라 35대 경덕왕은 어느날 충담사라는 시인 스님을 만나 `나라 잘 다스릴 방책`을 물었고, 충담은 “임금은 임금 답게, 신하는 신하 답게, 백성은 백성 답게” 저 마다 분수를 잘 지키면 나라가 편안하리라는 `안민가(安民歌)를 지어올렸다. 왕이 감동해서 “스님을 스승으로 삼고자 합니다”했으나 충담은 “중에게는 중이 갈 길이 있습니다” 굳이 사양, 분수를 지켰다.

그 무렵 월명사라는 음악 스님이 있었는데, 그는 피리의 명인이었다. 밤중에 그가 피리를 불면 가던 달도 걸음을 멈추었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실렸다. 그가 피리를 불며 마을 앞 길을 걸을 때는 사람들이 그 소리에 취해서 함께 걸었고, 그 길은 `월명의 길`이 불리었으며 사람들이 자꾸 이 마을로 이사를 왔다.

경주 문화예술인들은 충담과 월명을 기리는 축제를 매년 거행한다.

오늘날에도 피리의 명인이 있다. 중앙대 총장을 거쳐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까지 지낸 박범훈씨가 바로 피리 명인이다. 그는 동국대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박헌봉 국악상을 받았으며 `추임새``소리연``한국불교음악사 연구``작곡 편곡을 위한 국악기 이해``피리산조 연구`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리고 그는 중앙대 예술대학장 시절 `국악과 양악의 어울림`이라는 큰 업적을 남겼다.

많은 음악가들이 국악·양악의 교류는 어렵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그는 이 일을 훌륭히 성취해냈으며, 지금도 TV 음악무대에 `국·양악 협연`은 “소리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그는 욕심이 많았다. 재벌과 손을 잡았고, 권력의 단맛에 끌려갔다.

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하는 과정에 개입했고, 총장에 오른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MB정권시절 청와대 수석비서관으로 권력의 핵심에 들어갔다.

칼을 쥐면 휘두르고 싶기 마련. `10년을 가기 어려운 권력`임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치욕`이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검찰의 칼이 그의 목을 겨눈다. 충담과 월명을 알았더라면 송충이는 솔잎만 먹었을 것인데 그의 음악적 재능이 아깝다.

/서동훈(칼럼니스트)

팔면경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