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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종어보(德宗御寶)

서동훈(칼럼니스트)
등록일 2015-04-10 02:01 게재일 2015-04-1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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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이 된 세조는 두 아들을 두었으나 다 골골하다가 일찍 갔다. 맏아들 의경세자는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며 나날이 말라갔는데, 그는 왕위에 올라보지도 못하고 20세에 별세했고, 둘째 아들이 왕위를 이어 예종이 되지만 그 또한 등극한지 14개월만에 숨을 거둔다.

예종이 죽던 날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졌다. 초상날 차기 왕이 결정됐는데, 그것도 상식을 크게 벗어난 결정이었다.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 윤씨가 한명회 신숙주 등과 결탁해서 의경세자의 차남 자을산군을 왕위에 올린 것이다. 의경세자에게는 월산대군이라는 반듯한 맏아들이 있고, 예종에게도 아들 제안군이 있었는데, 그 적격자들을 모두 제치고 13세 된 차남 자을산군을 세운 것은 `그가 한명회의 사위이고, 대비 윤씨가 수렴청정으로 정치에 개입할 수 있으며, 세조의 측근들이 변함없는 권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윤씨와 실세들은 어린 임금 성종을 `얼굴마담`으로 앞세워 의경세자 왕위추존을 서둘렀다. 존호를 덕종(德宗)이라 짓고, 세자빈을 소혜왕후로 했다. 왕과 왕비가 세워지면 그 권위를 상징하는 인장(印章)을 새기기 마련. 국새(國璽)는 공식적인 국가사무 처결에 사용하고, 어보는 개인적으로 쓰는 도장인데, 왕, 왕비, 세자, 세자빈 등이 만들어 썼다. 덕종어보(德宗御寶)는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덕종비의 어보도 새겨졌을 것이다.

나라가 망하면 국새고 어보고 다 무용지물이 되기 마련. 그러나 일제는 조선시대의 어보들을 “우리 문화재”라며 종묘에 잘 보관하다가, 전쟁에 패하자 거기에 손 대지 않고 물러갔다. 그러다가 6·25가 터지자 미군 병사들이 종묘에 들어와 구경하다가 `거북이 않아 있는 커다란 금도장`을 기념품 삼아 들고갔는데, 그게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렇게 가져간 덕종어보가 이번에 돌아왔다. `사망후 새긴 도장`이니, 한번도 찍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머리를 힘 있게 치켜든`거북의 기세를 보면, 도장주인의 한이 풀릴듯도 하다.

/서동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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