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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꽃의 계절

서동훈(칼럼니스트)
등록일 2015-04-09 02:01 게재일 2015-04-0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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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엽, 경상도 성주군 월항면에 성주이(李)씨 `이장경`이라는 선비가 살았다. 그는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오래 살라는 뜻으로 맏아들은 백년, 둘째는 천년, 세째는 만년, 네째는 억년, 다섯째는 조년(兆年)으로 이름을 지었다. 그가 타계하자 묘소를 마을 석산사 왼쪽에 있는 야산에 썼는데, 지관이 “용이 알을 품은 천하명당”이라 했다. 그래서 그런지, 다섯 아들이 모두 과거에 급제해서 명문세가로 이름을 날렸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조에 들어서면서 이장경의 묘소는 다른 곳에 옮겨지고, 그 명당은 세종대왕과 후손들의 태실이 되었다.

이장경의 다섯 아들 중에서 우리가 잘 기억하고 있는 이는 5째 이조년(李兆年)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의 시조 `연가(戀歌)` 한 수 때문이다. `문학의 힘`이란 이렇게 위대하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은하수)은 삼경(三更)인제/일지 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다정도 병인양 하여 잠 못 이뤄 하노라” 그는 고려 말 친명파와 친원파가 갈려서 정권다툼을 벌이는 혼란기에 정치에 환멸을 느끼면서 벼슬을 버리고 고향 성주로 내려와 백화헌(百花軒)이란 당호를 써붙이고 꽃을 벗삼아 노후를 보냈다. 이 시조도 그 무렵에 지어진 작품이라 여겨진다.

개성에 황진이가 있었고 전북 부안에 이매창이 있었다. 둘 다 시문(詩文)과 음악에 뛰어난 자질을 가진 매화기생이었다. 오늘날 문학인들은 그녀들의 이름에서 `기생`이란 말을 떼내고 `여류시인`이란 존칭을 붙여준다. 매창을 흠모했던 명사들로는 허균, 이귀가 있었고, 유희경도 있다. 유희경은 천민신분으로 태어났으나, 사람들은 그를 천재라 불렀으며, 임진왜란때 의병으로 참전해 공을 세우면서 천민신분을 벗어났다. 매창은 특히 유희경에게 온 마음을 다 바쳤다.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는가/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여라”

배꽃이 한창 피어나는 계절이다. 두 연가를 읊조리기 알맞은 시절. 따뜻한 마음을 되살려보기 좋은 철이다.

/서동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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