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경의 다섯 아들 중에서 우리가 잘 기억하고 있는 이는 5째 이조년(李兆年)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의 시조 `연가(戀歌)` 한 수 때문이다. `문학의 힘`이란 이렇게 위대하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은하수)은 삼경(三更)인제/일지 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다정도 병인양 하여 잠 못 이뤄 하노라” 그는 고려 말 친명파와 친원파가 갈려서 정권다툼을 벌이는 혼란기에 정치에 환멸을 느끼면서 벼슬을 버리고 고향 성주로 내려와 백화헌(百花軒)이란 당호를 써붙이고 꽃을 벗삼아 노후를 보냈다. 이 시조도 그 무렵에 지어진 작품이라 여겨진다.
개성에 황진이가 있었고 전북 부안에 이매창이 있었다. 둘 다 시문(詩文)과 음악에 뛰어난 자질을 가진 매화기생이었다. 오늘날 문학인들은 그녀들의 이름에서 `기생`이란 말을 떼내고 `여류시인`이란 존칭을 붙여준다. 매창을 흠모했던 명사들로는 허균, 이귀가 있었고, 유희경도 있다. 유희경은 천민신분으로 태어났으나, 사람들은 그를 천재라 불렀으며, 임진왜란때 의병으로 참전해 공을 세우면서 천민신분을 벗어났다. 매창은 특히 유희경에게 온 마음을 다 바쳤다.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는가/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여라”
배꽃이 한창 피어나는 계절이다. 두 연가를 읊조리기 알맞은 시절. 따뜻한 마음을 되살려보기 좋은 철이다.
/서동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