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침 돋는 목소리로 최선을 다해 엄마의 안부를 물을 때. 안부를 묻는 내 최선의 목소리보다 더 빠르고 깊이 전해지는 늙은 엄마의 노심초사를 알 때. 한껏 게으르고 늘어져 소파 언저리를 떠나지 못하고 이리저리 뒹굴 때. 그때 몹시 아끼는 폴란드 산 십자꽃 무늬 잔에 커피를 내려 건네는 순정한 아들의 눈빛을 마주할 때.
오직 혼자 그 큰 영화관에서 조조 영화를 보게 될 때의 황홀한 두려움. 십분 간격으로 객석을 드나들며 어둠 속 관객의 안위를 살피던 영화관 직원의 숨결. 영화 속 왕페이가 입었던 티셔츠에 꽂혀 당장 홈쇼핑에서 충동구매 했을 때의 만족감. 그 소박한 셔츠가 외출할 때마다 뭘 입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줄여준다는 안온함.
소설에서는 개연성 때문에라도 있음직한 일만을 다루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숱한 변수 때문에 도무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는 통찰을 얻을 때의 짜릿함. 단순한 행복감을 넘어 저릿한 생각거리에 이를 때까지, 그 매일의 두 시간을 모아 내 식의 팔면경을 만들어 나갔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보내는 내 사랑의 인사였다. 이제 그 인사를 마감할 때가 되었다. 너무 오래 썼고 스스로 지쳤다. 떠나야만 하는 명백한 이유이다. 칠백여 편의 단상이 한 장 한 장 스냅사진이 되어 파노라마로 넘어간다. 중언부언한 그 많은 말들 속에 그래도 못다 한 사랑의 말들은 내면의 꽃밭에 심어 소설로 꽃피우겠다. 그간 응원하고 격려해준 독자님들과 신문사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봄꽃이 다퉈 피고 있다. 당분간은 아무 생각 없이 꽃 피는 찰나의 봄을 만끽하겠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