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저녁에는 손님을 치르느라 몹시 피곤하였다. 피곤을 핑계로 해가 머리 꼭대기에 오도록 늦잠을 즐기려는 참이었는데 딸네 식구들이 출동했다. 자식을 먹이는 일에는 제 몸 아픈 것도 불사하는 것이 어미라니 피곤을 무릅쓰고 일어났다.
아이들 조반준비를 하며 부엌바닥을 쓸다가 허리를 삐끗했다. 혼자서 돌아눕지도 못해 끙끙거리는 와중에 서울 사는 친구 J에게서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오고 있는 중이라는 연락이었다. 점심 시간 무렵이니 밥이라도 한 끼 먹여야 하는데 내 상태는 그럴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외식이라도 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좀체 움직여지지 않는 허리가 걱정스러웠다.
친구가 왔고, 나는 등산스틱을 의지하고 나섰다. 남편과 친구는 내 꼴이 우습다고 킥킥거리며 웃었다. 통증을 표내지 않으려고 기꺼이 따라 웃었다. 허리를 반으로 접고 아슬아슬하게 걸어 마당을 내려갔다. 그런 내 모습에 할머니 모습이 겹쳐졌다.
할머니는 허리를 반 접어 몇 발자국 걸으시다가 두 손바닥을 양 허리에 갖다 붙이시곤 허리를 천천히 피곤 하셨다. 다리는 동그라미를 그리듯 벌리고 무릎은 다 펴지 못하신 체였다. 늙어 고부라진 허리와 퇴행성관절염은 거동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 몸으로 장사하시는 어머니를 대신해 우리 남매들을 먹이고 입히는 가사 일을 도맡아 하신 할머니였다.
“한 시루 안에서 누워 자라는 콩나물이 있단다.” 무슨 이야기 끝이었는지 친구가 그렇게 말했고 뜬금없는 소리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앉아 있는 것도 통증 때문에 수월하지 않아서 할머니 생각에 잠기며 대화를 건성으로 하고 있던 참이어서 왜 그런 표현이 나왔는지 의아했다.
“그래? 그 참 재미있는 표현이구나!”
친구는 말갛게 웃으며 그 큰 입을 찢어 귀에 걸고는 말했다.
“모르나, 첨 들어봤나? 니는 먼 놈의 작가라는기 그마이 무식하노?“
그동안 나는 꽤나 잘 난 척 했던 모양이었다. 내가 모르는 것이 그렇게나 신나는 일인지 몹시 흥분해서 웃어 제치는 것이었다.
무식한 나는 움직이지 말고 안정해야 할 허리를 반 접고 등산스틱을 의지 삼아 친구에게 의리를 지키고 사흘을 드러누워 있다. 자꾸만 불어나는 체중을 말리려고 시작한 지난 보름간의 걷기운동이 도루묵이 되어 버렸다. 누워 있다 보니 밟히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노력이 아까운 운동도 그렇거니와 때맞추어 김치도 떨어지고 해야 할 집안일이 산더미다.
할머니는 가끔 어머니께 아픈 다리를 하소연하시면서 손녀가 집 안 일을 조금이라도 돕게 하라고 청할라치면 어머니는 손사래를 치셨다.
“시집 가믄 하기 싫어도 해야 할 부엌일을 뭐 하러 미리 시킨다는 거이야요. 기냥 두시라요” 나는 엄마의 응원에 힘입어 할머니의 아픈 다리나 허리를 모르는 척 했다.
아이를 낳지 못해 소박을 당했다는 할머니는 피난민이었던 할아버지를 만나 살림을 차렸다. 할아버지의 장성한 아들이었던 내 아버지의 모난 눈총을 받으면서도 묵묵히 집안일을 도맡아 하셨다. 정화수 한 사발을 떠 놓고 가족을 축원하느라 손바닥이 닳도록 비비는 삶, 여느 어머니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사신 할머니의 인생은 참 지난했다.
시루 안의 콩나물들처럼, 사촌들까지 모여 복작거리는 집에서 계집애라고 나 하나였지만 알아서 할머니의 고단함을 덜어드리지 못했다. 덜어드리기는커녕 친구들을 데려다 밥 먹이기 다반사였다. 나는 바로 할머니의 콩나물시루에서 누워 크는 콩나물이었던 것이다. 시집와서 소종가의 대소사를 거반 혼자서 감당해야하는 많은 일들은 그때 할머니를 돕지 않은 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