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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비테의 교육론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5-03-24 02:01 게재일 2015-03-2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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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물러나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이론서의 도움을 받고, 아무리 현명한 이웃의 조언을 듣는다 해도 내 아이를 직접 키우는 동안에는 객관적인 시각을 확보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더 이상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 없을 시기가 오면, 그제야 숨어 있던 자녀교육에 관한 여러 객관적인 생각이 모아지곤 한다. 사람의 일이란 게 언제나 지나고 난 뒤에야 후회하는 것. 키우는 동안 제대로 된 자녀교육법을 실천할 걸, 하는 아쉬움이 생기곤 한다. 하지만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한들 당시 행한 육아법에서 더 진일보한다는 보장은 없다. 자녀교육에 대해 아는 것과 자녀교육을 하는 것은 이상과 현실만큼의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자녀 교육은 부모의 제일 큰 관심거리이다. 그렇다고 그에 대한 명쾌한 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자녀 교육 관련 책에 나오는 모든 이론과 방법들은 조금씩 다른데다 그 방법들을 자신의 자녀에게 적용한다고 다 궁합이 맞는 것도 아니다. 독서모임에서 읽은 칼 비테의 자녀 교육 관련 책들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교육법에 완전히 공감 가는 것은 아니어서 살짝 아쉬웠다.

조기 교육의 필요성이나 자녀에 대한 인격적 존중 등에 관해 예화를 들어 설득할 때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자녀의 잘못이 곧 부모의 잘못이라는 논지를 펼치는 장면에서는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자녀교육에 있어서 부모의 책임에 대해 어느 누구도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환경적 요인과 자녀의 기질적 성향도 무시할 수 없다. 여러 요인이 있을 터인데 유독 부모 역할만이 자녀 교육의 전부인양 강조하면 부모 입장에서는 자책하게 된다. 칼 비테 자신의 교육법이 그의 아들에게 성공적으로 적용되었다고 해서 다른 부모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칼 비테 교육의 위대함이 깎이는 건 아니다. 시종일관 강조한 조기교육과 가정교육의 중요성은 이백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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