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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사이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5-03-23 02:01 게재일 2015-03-2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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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자판이 말썽이다. 서너 개의 글자판이 아예 먹통이다. 어르고 달래도 고장 난 부분의 글자는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다른 대부분의 자판이 온전하니 안 되는 곳만 건너뛰어도 독해는 되겠지 싶어 써나가는데, 웬 걸 무슨 외계어 향연장 같다. 고작 몇 개의 글자판이 막혔을 뿐인데도 무슨 말을 쓴 건지 쓴 나도 읽어 내릴 수가 없다. 당황스럽다. 휴일이라 AS센터에 달려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글은 써야겠고. 이 응급사태를 어찌할까 싶다. 다행히 남편 왈 노트북에다 일반 자판기를 연결하면 되니 걱정 안 해도 된단다. 먼지 쌓인 자판기를 꺼내 연결 실행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자판이 술술 먹힌다.

아주 작은 곳 하나만 막히고 끊겨도 온전한 교감에 이르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겠다. 여기까지만 접수했다면 이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외부 자판기가 연결되었기 때문에 이제 화면과 나 사이는 노트북에 딸린 자판을 쓸 때보다는 멀어졌다. 노트북 화면에 붙어 있는 일체형 자판기만큼의 공간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멀어진 화면만큼의 그 거리가 나쁘지 않다. 글씨가 더 선명하게 보이는데다 그만큼 어깨도 덜 굽혀진다. 살짝 노안이 온지라 사물을 너무 가까이 보는 것보다 조금 떨어져서 보는 게 더 편하다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다.

한 숨결이 곧 삶이란 얘기가 있다. 범우주적으로 보면 날숨과 들숨의 그 짧은 호흡 사이가 한 생애이다. 그 찰나 같은 생의 마당에 숱한 가지를 뻗어나가는 게 사람의 한살이이고 그 경계 안에서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자기 확립에 이른다.

이런 생각에 이르니 산다는 게 신비하기만 하다. 화면과 내 눈 사이 그곳에 흐르는 시공간의 부피와 질량만큼이 곧 스스로 관장할 수 있는 제 삶의 범위이다. 작거나 큰 그 시공간 안에서 누구나 제 나름의 한 숨결을 가꿔나간다. 그 한 숨결이 곧 우주로 연결된다고 생각하니 절로 숙연해진다. 허물어진 담벼락처럼 사라져 버린 글자판 덕에 이 봄날 구름 같은 상념 속을 홀로 첨벙거린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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