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반대로 일반적인 경우는 초고만 쓰고도 한 작품 완성한 것처럼 방치하게 되고, 두세 번의 퇴고를 거치기라도 했다면 이는 영원한 완성품으로 간주해 더 이상 쳐다보고 싶지 않게도 된다. 자기 작품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 아니라, 미흡한 줄은 알지만 거기까지 오는 것만도 지칠 대로 지쳐 제 한계를 느끼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쉽게 산에 오를 수는 없다. 레이먼드 카버의, 산 정상에 오른 자의 저 위엄서린 고백에 할 말을 잃게 된다. 이는 재능의 문제이기보다 적극적 의지의 문제이다. 한 여행가가 네팔로 산행을 갔더란다. 산행을 해야 하는 깊은 성찰이 없었으므로 불평불만이 많았다. 왜 이 산에 오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댔다. 그때 현지 가이드가 말했다. 여긴 산이 아니라 그냥 언덕이라고. 매일 높은 산을 오르는 그들에게 초록색이 보이는 한 여전히 그것은 언덕으로 간주될 뿐이었다. 그들에게 산이란 적어도 하얀 설산 정도는 되어야 했던 것.
적극적 자기 긍정의 의지가 있어야 설산에 닿을 수 있다. 오르려고 시도도 하지 않는 것은 가장 큰 시간 낭비이고, 오르면서도 지친 나머지 중턱에도 오르지 않은 채 산이라고 여기고 싶은 맘은 시간을 성급히 당겨 쓴 것이다. 백 개의 수정본이 있는 시를 짓는 마음으로 정진하고 매진했을 때라야 산에 오를 수 있다. 푸른 언덕이 아닌 흰 눈 풍경이 펼쳐지는 산.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