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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공룡 맛있겠다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5-03-13 02:01 게재일 2015-03-1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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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거짓을 모른다. 갓 태어난 아기라면 더더욱. 하지만 거짓만을 모를 뿐 희로애락의 감정은 확실히 느낀다. 순수한 영혼인 아기의 감정은 날 것 그대로이다. 숨김도 없고 과장도 없다. 제가 느낀 그대로 그냥 받아들인다. 거짓을 배울 기회가 없으므로 적대감 같은 것도 모른다. 거짓과 적의는 한 통속이어서 아직 어린 그에게는 먼 이야기이다.

어느 볕 좋은 날 천지가 진동하고 아기공룡 한 마리가 태어난다. 그런데 웬 걸, 태어나보니 혼자이다. 외로워서 슬퍼서 울었다. 외로움이나 슬픔은 학습된 감정이 아니므로 절로 그렇게 되었다. 울면서 타달타달 걸었다. 그때 어디선가 이런 목소리가 들린다면? “헤헤헤, 고 녀석 맛있겠다!” 이 장면에서 보통 독자는 아, 끝났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맛있겠다, 라고 선언할 수 있는 존재라면 그가 누구든 갑의 위치에 있을 것이고 그 자체가 위협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정작 아기공룡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맨 처음 한 말은 “아빠!”였다. 맛있겠다, 라는 말을 잡아먹겠다는 위협으로 이해한 게 아니라 제 이름을 부른 걸로 받아들인 것. “아빠가 내 이름을 불러 주었잖아요. 내 이름을 알고 있으니까 우리 아빠지!” 아기공룡을 잡아먹으려던 공룡은 뜻밖의 반응에 아빠가 되기로 맘먹는다. 다른 육식공룡과 싸워 아기공룡을 지켜내고, 아기공룡을 이해하기 위해 풀도 뜯어 먹고 열매도 삼킨다.

슬픔이나 무서움은 본능적 감정이지만 거짓이나 적의는 학습되는 감정이다. 따라서 아직 세상의 때에 노출될 기회가 없는 영혼에게 맛있겠다, 라는 말은 공포가 아니라 친근함의 의미가 될 수 있는 것. 무심코 내뱉은 `맛있겠다`라는 내 위협은 뜻하지 않게 상대에게 가서 믿음이 되기도 하는 것. 이름을 불러줘야 꽃이 된다는데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도 이미 꽃인 영혼들이 그런 상황을 만든다. 그 순정한 몸짓을 이해하고 보살피는 무장해제 된 어른에 관한 책이 고 녀석 맛있겠다, 이다. 힐링을 원한다면 서로에게 `하나의 눈짓`이 되는 이 그림책을 꼭 확인하라고 말하고 싶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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