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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티우스의 시학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5-03-12 02:01 게재일 2015-03-1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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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미학에 대한 성찰은 시대를 초월한다. 글 관련 사색이나 작법은 역사 이래 철학자들의 최대 관심거리 중의 하나였다. 고대 그리스 시대 때도 마찬가지였다. 철학자마다 시작(詩作)에 관한 나름의 생각들을 풀어놓기를 즐겼다. 당시는 연극이 유행하던 시대였고, 그 중에서도 비극은 문학의 최고 형식이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각 철학자들의 `시론`은 대개 비극에 관한 사유와 작법론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딱히 비극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문예 전반에 관한 사유서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근대 이후의 문학인들이나 철학자들이 지녔음직한 고뇌들이 그때 이미 넘쳐났다는 사실을 확인하니 신기하다. 내게 있는 `시학` 관련 책은 아리스토텔레스뿐만 아니라 플라톤과 호라티우스 그리고 롱기누스 등의 것이 같이 실려 있는데, 호라티우스 편의 글쓰기 기술에 관한 부분은 글로 고민하는 나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 뜨끔하면서도 웃음이 난다.

호라티우스의 말을 맥락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내 식으로 편집해보았다.`쓰는 자들은 대개 올바른 것의 겉모양만 보고 속아 넘어간다. 간결하게 쓰려고 애쓰다가 모호하게 쓰고, 섬세하게 쓰려다가 맥없고 힘없는 글을 선보이고 만다. 장엄하게 쓰려다 보면 부자연스러워지고, 감정의 비약을 피하려다 보면 소심하게도 땅바닥을 기는 꼴이 되고 만다. 단일한 소재에다 대담한 변화를 꾀해 생기를 불어넣고자 한다더니 숲에다 돌고래를 그려 넣고 파도에다 멧돼지를 그려 넣는다. 기술이 없으면 잘못을 피하려다 또 다른 실수를 한다.`

맞는 말만 하는 호라티우스. 그의 지적 앞에서 다시 반성문이다. 써놓고 보면 모호하고, 고치고 보면 맥없고, 다시 보면 부자연스럽고, 완성이다 싶어도 땅바닥을 기는 글을 생산할 때가 어디 한두 번이던가. 퇴고할 때마다 멧돼지가 있어야 할 곳에 돌고래가 날뛰고, 돌고래가 있어야 할 곳에 멧돼지가 튀어나오는 경우는 쓰는 한에서는 평생 지속되리라. 디테일한 호라티우스의 짧은 시론에 깜짝 매력을 느낀 한나절이었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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