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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테이션 게임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5-03-06 02:01 게재일 2015-03-0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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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입장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훈련이 인간사회만큼 더딘 곳도 없다. 세상의 반 이상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관념이나 시스템은 별 검증 없이 이상한 것으로 기정사실화되어 버린다. 가장 보편적 진리는 다양성임에도 독보적 천재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닫혀 있다. 천재성의 실천에만 주력하는 그들 남다른 삶의 방식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는 늘 역부족이다. 하지만 사람처럼 생각하지 않는다고 기계가 잘못이 아닌 것처럼, 평범한 사람처럼 생각하지 않는다고 그가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니다. 기계와 사람의 구조가 다른 만큼의 사람과 사람 사이엔 다양성이 존재한다.

몰두형 천재는 감정에 서툴 수밖에 없다. 모든 관심을 한 곳에 `몰빵`하다 보니 사회적 가면을 학습할 기회가 없다. 미화와 과장 없는 직설화법을 구사하는 그들은 친구 관계를 확장시킬 이유 같은 것도 댈 줄 모른다. 학창시절부터 이런 성향 때문에 폭력과 왕따에 시달렸던 앨런 튜링(베네딕트 컴버배치 분)은 유일한 친구가 되어준 크리스토퍼를 우정이 아닌 애정의 감정으로 의지하게 된다. 수학과 퍼즐에 능한 튜링은 나치 독일의 암호체계인 에니그마 해독에 투입된다. 자신이 만든 암호해독기를 크리스토퍼라 부를 정도로 죽은 친구나 학창시절의 상처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이해받지 못한 고독한 천재는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기계인가 인간인가, 범죄자인가 전쟁영웅인가? 동료나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된 채 에니그마 해독에 온힘을 다한 그가 세상을 향해 하고 싶었던 가장 절실한 말은 무엇이었을까. 날 혼자로 내버려두지 마, 혼자가 되기 싫다고, 이런 절규는 아니었을지. 남다른 사람이라고 아픔, 외로움, 사랑 등의 감정이 없을 리 없다. 비범한 사람들 덕에 세상은 점점 더 나아졌지만 평범한 우리는 정작 그 비범한 자들의 서툰 감정을 깊게 헤아리지 못했다.

컴퓨터의 아버지인 앨런 튜링의 비화를 영화화한 `이미테이션 게임`. 한 인간의 실존에 관한 담담한 보고서인 이 영화는 근래 만난 가장 인간적인 작품이었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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