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이란 지명과 관련해 지금부터 약 1800년 전에 연오랑·세오녀 신화가 탄생했다. 이 신화에 내포된 사상은 일월사상이다. 우리나라의 건국과 관련된 신화는 단군신화이고, 거기에 내포된 홍익사상이 한국사상의 근원이라면 연오랑·세오녀 신화가 품고 있는 일월사상은 포항정신의 근원이다. 따라서 포항의 정체성은 이 신화를 잘 음미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포항정신은 곧 일월정신이고, 일월정신은 화합과 개척, 창조의 정신으로 요약된다.
우리들 의식 속에 녹아있는 일월정신은 한편으로 본다면 일종의 선민정신이고, 으뜸 정신이다. 갈대밭 황무지를 개간하여 세계 굴지의 포스코를 창립한 것도, 전국 최초로 새마을운동을 일으킨 것도, 국내에서 처음으로 사방사업을 실시한 것도 모두 개척과 창조정신, 으뜸정신에서 나왔다. 그 정신은 지역에서 대통령까지 배출하는 밑거름 됐다. 그런데, 우리가 잊고 있는 게 하나 더 있다. 포항이 경북에서 가장 빠른 3.1운동의 진원지라는 것이다. 포항의 3.1운동은 1919년 3월 11일 포항교회 교인들과 사립영흥학교 교사들이 주동하였다. 당시 포항교회의 장로였던 최경성은 이미 그해 3월 8일 있었던 대구 3.1운동에 참여하여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일으키는 중 일경에 잡혀 재판을 받게 되었다. 같은 교회의 장로였던 송문수는 대구에서 포항으로 내려와 대구의 3.1운동 소식을 영흥학교의 교사인 장운환, 집사인 이봉학, 그리고 교인 이기춘 등에 게 알려 그들과 함께 3월 11일에 있을 포항장날을 기하여 만세운동을 거행하기로 작전을 세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계획이 노출되어 독립선언서와 인쇄물이 일경에 압수되고, 주동자들은 검거돼 구속되었다. 이 소문은 시내에 금방 퍼졌다. 주동자들은 구속되었지만 3월 11일 낮부터 수백 명의 군중이 포항장터에 운집하여 만세를 부르고 독립선언서를 벽에 내걸며 시위를 하였다. 시위는 12일에도 이어졌다. 이날 군중들이 영흥학교 서편에 이르렀을 때는 그 숫자가 천여 명으로 늘어나 있었다고 한다.
포항의 3.11 거사는 영일군의 각 지역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나갔다. 특히 3월 22일에는 청하와 송라면에서 대대적인 만세시위가 있었다. 이런 급박했던 당시의 상황을 입증해주는 자료가 있다. 바로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이다. 이 책에는 영일군의 3.1운동 시위 횟수가 9회, 참가 연인원은 2천900명, 사망자가 40명, 부상자는 380명, 피검자는 320명으로 나타나 있다.
올해로 3.1운동이 96주년을 맞았다. 3.1절 날 포항은 별 행사 없이 조용히 넘어 갔다. 반면 인근 영덕군에서는 매년 3·1절이 되면 3·18만세운동 희생선열들을 추념하고 애국충절의 독립운동을 재현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3. 1정신을 군민이 화합하는 정신문화운동으로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영덕군민들은 이미 1983년 11월, 3.1운동이 가장 격렬했던 영해면 소재지에 `3.1 의거 기념탑`을 준공하여 선열들의 넋을 추모하고 있다. `영덕군지`에 의하면, 영덕지역의 첫 만세의거는 포항보다는 1주일정도 늦은 3월 18일 영해장터에서 부터 시작됐다. 피해 규모는 시위대 중 8명이 현장에서 즉사하였고, 1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고 했다. 영덕과 영해지역을 포함한 영덕군 전체에서 3.18 만세의거에 참여한 인원은 수 백 명인데, 약 600여명의 시위 참여자가 검거되었고, 이 중 170명이 재판을 받았다고 한다.
포항은 시기적으로 도내에서 가장 일찍 3.1운동에 동참했다. 규모면이나 희생자면에서 보더라도 도내 어떤 지역보다도 우세하다. 포항의 정체성은 시민들이 그 본질을 정확히 이해할 때 바로 서게 될 것인데, 내용을 몰라서 일까. 아니면 알고도 관심이 없는 건가. 정작 포항에는 아직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기념하는 행사나 조형물이 하나도 없다. 포항의 3.1운동은 포항정신의 뿌리가 돼 포항근대사의 등불로 영원히 빛나야 하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이 지면을 통해서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 범시민적 차원에서 `포항 3.1운동 기념비`를 건립하자. 비만 세워둘게 아니라, 3.1절 전야제 행사를 개최하자. 매년 2월 29일 저녁, 풍물놀이를 시발로 옛 포항교회에서 형산강하구 둔치까지 10여 km 구간 포항운하를 따라 가족과 함께 참여하는 건강걷기대회를 가지면 어떨까? 지역 청소년들이 모두 한자리에 나와 어울 마당을 개최하는 것도 좋다. 관과 시민, 출향인들 까지 옛 포항교회에서 결집되면, 채화된 횃불을 앞세워 옛 영흥학교자리를 거쳐 포항운하를 따라 형산강 하구까지 행진을 하는 것이다. 구한말 지역 출신으로 문경새재 이남에서 위세를 떨쳤던 최세윤 의병장 의병출정식이 이때 재현되어도 좋겠다. 시민 모두가 하나가 돼 96년 전 그 당시의 함성을 외치며 횃불행진을 하는 것이다. 행진이 끝나 형산강 둔치에 군중들이 모였을 때 각종공연 등 불꽃놀이로 축제분위기를 고조시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포항의 불꽃놀이 축제를 이즈음에 맞추면 어떨까?
가장 포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과 같이 포항을 상징하는 이미지는 포항의 문화유산과 그 정신을 바탕으로 했을 때 창조적인 생명력을 갖게 된다. 경북 최초로 3·1운동을 일으켰던 그 으뜸정신으로 시민들이여 다시 한 번 결집하자. 이제 지역경기회복을 위해서도 포항정신을 대·내외에 과시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