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파리의 필립 김 교수를 어느 국제 학술회의에서 만났다. 파리에서 한국학 강의를 하는 그는 재외 동포이며 그의 원래 고향은 평양이다. 그는 북한에 살고 있는 가난한 조카의 간청으로 헌 트럭을 한 대 사주었단다. 그는 이 차를 장마당에 팔 물건을 실어다 주기 시작하여 이제 상당한 부자가 되었단다. 호주 시드니에서 만난 어느 동포는 회령에 배내기 염소를 사주어 그것이 늘어나 북한 산촌에서는 그의 인기가 높다는 것이다. 북한 땅에도 돈을 벌어 잘살아 보려는 사람이 이처럼 늘어나고 있다.
김정일은 2002년 7·1 경제 관리 개선 조치, 즉 임금 현실화와 생산 인센티브제 등 부분적 경제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는 물가 폭등과 인플레 현상을 통제하기 위한 2009년 화폐 개혁까지 단행하였다. 이 역시 실패로 끝나 당 재정 부장 박남기의 처형으로 이어졌다. 북한의 이러한 초보적인 자본주의 실험은 북한 경제의 개선에 기여하지 못하고 끝나 버렸다. 인민들의 식량난은 해결되지 못하고 `고난의 행군`은 계속되고 탈북자의 행렬은 이어 졌다.
김정은은 연초 “인민들이 아직도풍족한 생활을 한번 누려 보지 못했다.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북한의 선전용 문구이지만 그가 물자 부족 등 경제난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젊은 지도자 김정은은 선군 정치를 강화하면서도 자본주의적 실험은 계속하고 있다. 그는 지난 해 공업 생산의 하부 분권 정책인 `5·30 조치`를 단행하였다. 이는 생산의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정부나 기업소에 분산하는 일종의 공장장 책임제이다. 그는 농업 생산에서도 `6·28 방침`을 발표하여 협동 농장원의 수를 4~6명으로 대폭 축소하였다. 소위 `포전(圃田)담당제`라 하여 소규모 가족 영농제를 허용한 셈이다. 그는 `인민들을 위하여` 능라도 유원지, 마식령 스키장, 평양의 대형 수영장까지 개장하였다. 최근 두만강 하구에는 중·러와 함께 30㎢의 국제 무비자 관광지대도 공동 개발한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북한의 이러한 자본주의적 실험은 동시에 초기 시장 경제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평양을 다녀온 중국인들은 북한 땅에도 계급적 적인 신흥부자가 탄생했다고 전하고 있다. 평양 고려 호텔 2층 코너에서는 무역 중개로 돈을 번 평양의 부자들이 양주를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평양에서도 사회안전성(경찰)의 900대의 콜택시도 이용되고 휴대 전화 없이 장사도 할 수 없단다. 종합 시장은 이제 북한 주민들의 정보의 교환처가 되고 있다.
북한 땅에서 북한식 자본적 실험은 계속 확대될 수 있을까. 북한의 이러한 변화가 중국식 사회주의적 시장 경제로 연결될 것인가. 불가피한 현상이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그 전망은 아직도 어둡다. 수령에 대한 절대적 충성이 요구되는 체제하에서의 자본주의적 실험은 자칫 체제 붕괴라는 위험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북한식 자본주의적 실험의 심각한 딜레마이며 개혁 개방의 한계이다. 북한 당국이 시장에 대한 통제와 이완을 반복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이며 자본주의적 황색 바람을 차단하기 위한 `모기장 이론`을 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북한의 자본주의적 실험이 보다 일찍 시작되었다면 현재의 중국보다 잘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그 기회를 놓치고 현재의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북한의 핵·경제 병행 노선은 경제 회생의 답이 아니며 오히려 시장 경제나 글로벌 경제에의 편입을 막는 장애물이다. 북한이 늦었지만 중국 식 경제 개혁이나 베트남식 도이모이 정책을 시급히 채택해야 할 것이다. 미국에 대해 철천지원수였던 쿠바의 카스트로도 정책을 바꾸어 미국과 수교를 하였다. 전세계가 변하는데 북한만이 변하지 않아 고립되어 있다. 북한은 무모한 핵실험을 버리고, 자본주의적 실험을 보다 적극화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