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웃음을 주는 부분 중의 하나가 유희춘 부부가 주고받은 편지 내용이다. 하도 재미있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글감으로 써먹곤 한다. 시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당시 정치인들처럼 유희춘도 유배 및 기타 사정으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편지였다. 유희춘이 안부를 물으면 송 부인이 답을 하는 형식이었다. 당대 여류 문장가로 손색이 없는 송덕봉 여사의 유머 코드 및 카리스마는 무척 현대적이라서 통쾌하다.
꽃 흐드러지고 음악 소리 쟁쟁해도 좋은 술 어여쁜 자태엔 흥미 없더라, 참으로 맛있는 건 책 속에 있더라, 뭐 이런 내용의 유희춘 시에 대한 송덕봉 여사의 답장은 이렇다. “봄바람 아름다운 경치는 예부터 보던 것이요, 달 아래 거문고 타는 것도 같은 한가로움이지요. 술 또한 근심을 잊게 하여 마음을 호탕하게 하는데 당신은 어찌 책에만 빠져 있단 말입니까!” 한 마디로 `놀고 있네, 잘난 척 하지 말고 즐겨야 할 땐 즐길 줄도 알아라.`고 남편에게 일갈한다.
관직 생활한다고 서울에 올라갔을 때는 홀로 서너 달 지내면서 일절 여색을 가까이 하지 않았으니 은혜 입은 줄 알라면서 편지로 생색을 낸다. 이때 송 여사의 답시. “군자가 행실을 닦고 마음을 다스림은 당연한 일인데, 겨우 몇 달 독숙했다고 고결한 체하며 은혜를 베풀었다 하시오. 당신은 아무래도 인의를 베푸는 척하면서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병폐가 있는 듯 하오.”
암만 봐도 미암보다는 덕봉이다. 아니다, 이런 치명적인 매혹을 지닌 아내를 기록한 이는 미암이니 선생의 승리인가?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