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이 지났다. 메시지도 미확인인 채로 있다. 휴대폰이 고장 난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요즘 세상에 한나절이면 수리가 다 되는데 이 무슨 변괴인가. 다른 이유가 하나둘 고개를 쳐들었다. 학생들 데리고 오지 캠프라도 들어가서 불통인가. 몸이 아파 결근했는가. 아직 적응이 덜 된 차에 윗선과 마찰이 생겨 애꿎은 휴대폰을 집어 던졌는가. 계약서에 있는 부동산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아들 거처에 가 봐달라고 할까. 이럴 때를 대비해서 비상연락처 하나 만들어 둘 것을. 때늦은 후회가 나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타지에 간 지 채 한 달도 안 된 터라 그럴 겨를도 없었다. 코 구멍만 한 원룸에 관리인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골 동네처럼 이웃이 있는 것도 아니다. 생각할수록 갑갑했다
어떻게든 아들에게 닿아야 했다. 메일함을 열었다. 휴대폰이 안 되면 노트북에라도 파고들어야 했다. 먼지가 부옇게 쌓인 주소록에서 아이 이름표를 뽑아 편지를 썼다. 아들아. 이 메일은 가능할지 모르겠다. 네 휴대폰이 안 되니 적막강산이구나. 집 전화도 없지. 자식 찾는다고 근무하는 학교로 전화 걸기도 민망하지. 해서 생각 끝에 메일을 보낸다. 한 번쯤 전화라도 해주지. 네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구나. 내일은 할 수 없이 네가 근무하는 학교로 전화를 해볼까 생각 중이다. 너에게 닿지 못하는 오늘 밤이 꽤 길겠다. 이 메일을 보는 대로 바로 연락해다오. 도장 찍듯 전송 버튼을 콱 눌렀다. 입력하신 아이디는 존재하지 않거나 오랫동안 접속하지 않은 휴면 아이디라 전송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제길.
아들이 공군에서 훈련받던 시절이었다. 늦은 밤 막 잠자리에 들려는 시간에 전화벨이 울렸다. 낯선 지역 번호이어서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끊어버렸다. 베개를 툭툭 치며 머리를 누이는데 감전이라도 된 듯 몸이 침대 밖으로 퉁겨졌다. 아들이 입대한 진주의 지역 번호였던 것이다. 잠든 남편 깰세라 숨죽여 거실로 나가 밤새도록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쪽으로 연락할 방도가 없다는 사실이 눈앞을 뿌옇게 만들었다. 얼마 후 휴가 나온 아들을 구석으로 데리고 가 자초지종을 물었다. 엄마 목소리 듣고 싶어 긴 줄도 마다 않고 전화를 걸었는데 다시 줄 맨 뒤쪽으로 가서 기다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막사로 돌아와 애꿎은 베개에게 화풀이 했다 한다.
학교는 마침 토요일이라 전화 받는 사람이 없다. 급기야 아들의 여자 친구가 떠오르지만 주저했다. 흘려들은 기억을 쥐어 짜 근무처 이름을 알아냈다. 번호를 누르는 손끝이 떨린다. 상냥한 아가씨가 받는다. 아들의 여자 친구 이름을 대자 저쪽에서 내가 누구인지 묻는다. 갑자기 그 많던 언어들이 서로 차례를 미루며 뒷걸음질 친다. 이쪽 사정을 죄다 말했다. 아가씨의 친절함 끝에 묘한 웃음이 대롱대롱 매달려 전화기 속으로 사라졌다. 아직 이른 아침시간이다. 근무가 없는 날이라 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죽을 판이니 전화벨이 어서 울리기를 기다렸다. 전화번호가 떴다. 마지막 번호 네 자리가 아들의 그것과 같다. 저희는 메신저로 서로 연락 중인데, 안 그래도 어머니께 말씀드리라고 했었는데 안 했나 보군요. 혼내세요.
나쁜 놈, 저 편하면 그만이지. 저 고달파야 `엄마`하고 찾을 테지. 아니 이젠 그럴 일도 없겠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제 여자 친구와 먼저 나눌 것이다. 우리도 부모 걱정시킬까 봐 쉬쉬하며 덮지 않았던가. 참을 성 없는 내가 더 나쁘다. 아들이 아픈 것이 아니라 휴대폰이 아프다니 다행이다. 아, 엄마. 무슨 일이 있으면 학교에서 집으로 연락을 하죠. 그리고 휴대폰 고치러 갈 시간은 어디 있어요.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학교에 붙들려 있는데. 오늘 겨우 시간이 나서 고쳤어요. 그리고 학생 휴대폰 빌려서 문자 넣었었는데, 안 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