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현실을 지배하는 가장 큰 흐름은 자본 이데올로기이다. 천민자본주의에 물든 사회는 내남할 것 없이 그것에 경도되어 모든 가치 판단을 돈과 연관 짓는다. 국민 대부분은 중하급 월급쟁이이거나 영세한 자영업자들이다. 그들에겐 능동적 힘을 발휘할 기회도 패기도 없다. 나머지 십 퍼센트도 안 되는 자산 계급이 이 자본주의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킬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스스로 착각하고 길들여진다. 노력하고 몰입하면 그 십 퍼센트, 아니 일 퍼센트의 그룹과 같아질 수도 있을 거라고. 어쩌면 그런 무모한 착각 덕에 자본주의의 페달을 밟는데 적극적 동참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존을 위한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못 가진 자가 득을 취할 일은 거의 없다. 극소수인 가진 자를 위해 수많은 보통 사람 또는 그 이하의 구성원들이 그들을 떠받치는 구조, 이것이 천민자본주의의 실상이다.
국가와 자본은 끊임없이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는 데다 교묘하고 조직적이다. 가진 자나 권력자가 갑질을 해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길들여질 수밖에 없는 구조 안에 머물게 된다. 그것이 지속되면 불의에 거부하거나 투쟁할 힘마저 잃어버린다. 자본이 만든 비겁의 굴레에 구성원은 머물고 자본은 그 시대를 백분 활용한다.
비굴한 시대상의 좋은 예시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다.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처럼 정당한 분노는 그들의 것이지만 그 분노를 제대로 부려놓을 수가 없다. 불합리와 부조리의 난장 앞에서도 적극적 연대나 공감은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자본의 노예에서 자유롭지 못한 개별자가 당장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희망 잃은 시대를 진단하는 활자 앞에 밑줄 긋기조차 착잡하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