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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속(直屬)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5-01-12 02:01 게재일 2015-01-1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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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이 고만고만하기만 한 저녁, 어두워지는 시간의 깊이만큼 검은 공허감이 밀려온다. 습관처럼 한 편의 시를 읽고, 한 문장의 산문에 밑줄을 긋는다. 길 떠나 한뎃잠 설친 간밤의 피로가 여전하다. 그래도 문맥은 제대로 와 가슴에 꽂힌다. 누가 뭐래도 읽고 쓰는 일의 직속일 때가 가장 평화로운 자극이다. 최승자의 시 한 편을 묵독한 후 글벗이 건넨 김연수의`소설가의 일`을 펼쳤다. 앞장 색지에 빼곡하게 남긴 글벗의 친필이 보인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 님을 알게 된 것, 제 인생의 크나큰 행운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밑줄 팍팍 그었고, 도전도 얻었고 용기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끝내 희망에 겨워 울기도 했습니다. 아직 신파에 잘 빠지는 어설픈 초보라 과하게 감격했는지도 모르겠으나, 님께도 분명 의미 있는 책일 거라 여겨 삼가드립니다.” 친구가 되는 일의 숭고함, 한 권의 책이 주는 용기와 도전 정신, 그 책이 친구에게 가서 같은 의미를 줄 것이라는 확신, 인용한 몇 구절 속에 무릎 담요 같은 포근한 진심이 담겨 있다.

김연수 산문의 일부 요지는 이렇다. “매일 글을 쓴다. 한순간 작가가 된다. 이 두 문장 사이에 신인, 즉 새로운 사람이 되는 비밀이 숨어 있다.” 그러니까 쓰기에 왕도 없다. 매일 읽고 쓰면 된다. 쓰고 싶다고 타령할 그 시간에 그냥 쓰면 된다. 쓰는데 재능 같은 건 없고 재능은 잠겨 있지도 않다. 그것이 글쓰기의 비밀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 사람들이 정치를 하며 살고 있다 / 경제를 하며 살고 있다 / 사회를 하며 살고 있다 // 꿈인지 생시인지 / 나도 베란다에서 / 화분에 물을 주고 있다” 최승자의`물 위에 씌어진 3`의 시편이 김연수의 산문 내용과 겹쳐진다.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간다. 뭉근한 열정의 김연수는 매일 소설을 쓰고, 꿈인지 생시인지 기로에 선 최승자는 시간 맞춰 화분에 물을 준다. 골방에 틀어 앉은 또 다른 열정가는 글밭에 씨를 뿌린다. 종이의 직속이 되어 글씨를 뿌린다. 쓰는 자에겐 그것이 정치요 경제이며 사회의 전부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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