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자 경색된 남북 관계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박 대통령의 분단 세월 70년을 청산해야 한다는 신년 메시지에 이어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신년 연설이 관심을 끈다. 북한 김정은은 일정한 회담 여건과 환경이 조성된다면 남북의 고위급 회담은 물론 최고위급회담까지 못할 것이 없다고 적극성을 보였다. 고위급이든 분야별 회담이든 새해에는 남북 간의 대화가 재개될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회담만이 능사가 아니라 남북 회담이 현재의 경색된 남북관계 개선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데 있다.
북한의 회담 제의를 지켜봐야겠지만 남북 당국이 대화와 접촉을 서두르는 배경은 다음과 같다. 박 대통령은 지난 연 초 선언한 `통일 대박`을 위해서라도 이제 대북 접촉을 본격적으로 시도해야할 시점이다. 집권 3년차에 들어서는 박근혜 정부는 이 기회를 놓치게 되면 이명박 정부의 `잃어버린 5년`을 또 다시 답습할 가능성이 높다. 집권 4년차에 들어선 북한의 김정은은 핵문제뿐 아니라 북한 인권 문제로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 더구나 북한의 총체적 경제 위기는 극복될 전망이 어둡다.
그러나 얼어붙은 남북관계는 회담만으로 쉽게 해빙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남북의 고위급회담, 각 분야별 회담에 이은 총리 회담. 두 차례의 정상 회담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1992년 남북 총리간의 교류와 협력을 규정한 `기본 합의서`는 물론 남북 정상 간의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마저 사장되어 있다. 이러한 정황에서 앞으로 남북이 정상회담을 하던 고위급 회담을 하던 그 약속과 합의가 지켜지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 가. 남북이 조건 없이 만나 합의한 내용은 상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 자체가 민족통일에 관한 민족적인 열망만 좌절 시킬 뿐이다.
이제 어떤 규모의 회담이던 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올해 남북회담이 성사되어 열매를 거두려면 남북 당국이 회담에 앞서 특별히 유념해야할 사항이 있다. 이것은 여러 차례의 남북회담의 실패가 가르쳐준 교훈이다.
첫째, 남북 회담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회담의 조건과 전제부터 제거하여야 한다. 북한의 핵실험 문제, 인권 문제는 남한의 한미 합동 군사 훈련, 대북 전단 살포와 함께 남북회담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남북 어느 한쪽이 이의 제거를 회담의 전제로 요구하면 회담 자체가 성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 문제를 포함한 남북의 모든 사안을 협상의 테이블에는 올려 논의할 수는 있다. 그러나 남북은 이산가족 상봉과 대북 인도적 지원 문제, 금강산 관광, 대북 투자 등 비교적 쉬운 문제부터 풀어가는 것이 순리이다.
둘째, 남북한 당국은 남북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는 말아야 한다. 남북 회담을 정부 당국이 국면 전환용이나 정치적으로 이용할 때 그 회담은 지속될 수 없다. 특히 김정은 정권이 대미 협상용으로 남북회담을 이용한다면 그것은 한계가 부딪칠 수밖에 없다. 1971년 남북은 역사적인 `7·4 남북 공동 성명`을 정치권력의 절대화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대남 협상이 김정은 권력의 정당성에 이용될 수는 없다. 우리 역시 북풍을 대선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 남북은 공히 이러한 부끄러운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셋째, 남북은 공히 남북 간의 합의를 입법기관의 비준과 추가적인 입법 조치를 통해 실천하여야 한다. 개성 공단이 지속되는 것도 이러한 후속조치가 따랐기 때문이다. 또한 남북이 합의하여 마련한 문건은 정권 교체에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계승되도록 하여야 한다. 그것은 25년 전 독일 통일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이다. 분단 70년 새해에 열릴 가능성이 높은 남북 회담의 실질적인 열매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