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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 이발

등록일 2015-01-02 02:01 게재일 2015-01-0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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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태 준
떄때로 나의 오후는 역전 이발에서 저물어 행복했다

간판이 지워져 간단히 역전 이발이라고만 남아 있는 곳

역이 없는데 역전 이발이라고 이발사 혼자 우겨서 부르는 곳

그 집엘 가면 어머니가 뒤란에서

박 속을 긁어내는 풍경이 생각난다

마른 모래 같은 손으로 곱사등이 이발사가

내 머리통을 벅벅 긁어주는 곳

벽에 걸린 춘화를 넘보다 서로 들켜선 헤헤헤 웃는 곳

역전 이발에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저녁이 살고 있고

말라가면서도 공중에 향기를 밀어넣는 한송이 꽃이 있다

그의 인생은 수초처럼 흐르는 물 위에 있었으나

구정물에 담근 듯 흐린

나의 물빛을 맑게 해주는 곱사등이 이발사

세세한 체험의 결을 만지며 시인은 잔잔한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이 땅 어느 소읍에도 있을 법한 동네 이발소를 풍경의 중심에 두면서 편안한 말투와 정겨운 정서를 엮어가면서 기억의 창고에서 하나 하나 추억의 소품들을 꺼내고 있다. 가만히 눈 감으면 우리는 벌써 그 시골 이발소 의자 위에 떠억하니 앉아서 곱사등이 이발사가 기다리고 있는 풍경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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