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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갈무리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12-31 02:01 게재일 2014-12-3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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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해가 저물었다. 파다 만 우물처럼 물은 솟지 않고 갈증만 남았다. 우물은 내년에 계속해서 파면 될 것이고 우선 급한 갈증부터 해소하기로 한다. 올해를 넘겨서는 안될 것부터 체크한다. 갈무리는 잘해야지.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로 한다. 기실 초대랄 것도 없다. 바깥 밥 먹고 겨우 티타임이나 마련하는 자리이다. 하지만 건성으로 주부 타이틀을 쥐고 있는 나 같은 이에겐 그 정도도 쉬운 게 아니다.

마루부터 둘러본다. 치우고 손봐야 할 것 투성이다. 장식대 위에 널브러져 있는 약봉지와 각종 파스, 몇 달은 방치해 놓았음직한 보조식탁 위의 더께 쌓인 고지서들, 주인 손길에서 멀어진 지저분해지고 풀 죽어 있는 창가의 화분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다. 왕도는 없다. 그저 찬찬히 해나가야 한다. 불필요한 물건들을 치우고 청소기를 돌린다. 내 깜냥으로 감당하지 못했던 화분들도 정리한다. 목 꺾여 숨넘어가기 직전인 폴리셔스에 물을 주고, 누렇게 말라가는 관상용 대나무의 잎 끝을 잘라준다. 물을 너무 자주 줘 물러버린 알로에의 가지를 솎아낸다. 여름 지나 한 번도 닦지 않아 희붐한 먼지 알을 까고 있는 인도고무나무의 넓은 잎을 닦아준다.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온들 근본적으로 달라질 건 없다. 약봉지는 장식대 위에 내리꽂히는 햇빛에 바랠 것이고, 날아든 고지서는 빚처럼 식탁에 쌓일 것이며, 화분은 여전히 창가에서 목이 타들어갈 것이다. 살아가는 한 나는 약봉지고, 고지서고, 화분이다. 먼지 쌓이고 수선스러우며 말라가는 그것들을 손님이 온다고 해가 바뀐다고 확 버릴 수는 없다. 다만 최선을 다해 갈무리 할 뿐이다. 유효기간 남은 약은 약보관함으로, 철 지난 고지서는 분리수거함으로, 단장을 마친 화분은 그 자리 그대로 남겨둔다. 치우고 버리고 솎아내기만 했는데도 마루 풍광이 달라졌다. 목간 마치고 거울 앞에 선 색시처럼 새치름하고 깔끔하다. 이 정도면 됐다. 친구들도 새해도 맞을 정도는 되었다. 갈무리는 완벽히 바꾸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정리하는 것이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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