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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2014년,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정치

등록일 2014-12-29 02:01 게재일 2014-12-2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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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교수 신문이 말의 해인 2014년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지록위마(指鹿爲馬)를 선정하였다. 참여 교수들의 투표로 결정하지만 이 용어는 세태에 대한 풍자적인 의미를 지닌다. 남을 속여 옳고 그름을 바꾸는 상황을 비유하는 표현인 지록위마는 사기(史記) 진시황본기에 나온다. 진시황이 죽자 환관 조고가 태자 부소를 죽이고 어린 호해를 황제로 세워 조정의 실권을 장악한 뒤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며 “좋은 말 한 마리를 바칩니다”라고 거짓말을 한 것에서 유래했다. 당시 사슴을 말이 아니라고 밝힌 신하는 처형되었다. 최고통치 권력 주변의 진실을 가르는 위선의 정치, 환심의 정치를 풍자하고 있다.

2014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갈등과 반목의 정치도 한해가 저물고 있다. 해방 후 현대 정치사에서 대통령의 눈을 가리고 이권을 챙기는 지록위마의 정치는 수없이 많았다. 자유당 독재 시절의 측근 정치는 말할 것 없고, 유신체제와 신군부 통치하의 일부 실세들의 국정농단은 정치적 비극으로 종결되었다. 지록위마의 정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결국 권력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신뢰위기를 자초한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가 소통의 정치, 공개 정치, 공정한 절차를 따르는 정치를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선 집권 여당부터 사슴을 말이라고 우기지 않았는지 진정으로 자성해 보아야 한다. 집권 3년차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박근혜 정부는 국민 대통합의 정치, 경제 민주화의 정치, 비정상의 정상화 정치에 어느 정도 충실했는지 자성하길 바란다. 최근의 국정 농단으로 의심받는 정윤회 사건 역시 청와대의 `단순 문서의 유출사건`으로 종결될 수 있을까. 검찰에서 곧 사건의 전모를 밝히겠지만 국민들의 정서가 그것을 어느 정도 신뢰할지 현재로서 의문이다. 집권 당 대표의 말이 수시로 바뀌고, 대통령의 눈치만 살피는 상황에서 `보수 혁신`은 간판일 뿐이며 그것 역시 또 다른 위록지마이다. 교수신문의 사자성어를 선정한 어느 교수는 “정치계의 온갖 갈등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대통령 스스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컫는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국민들은 말과 사슴을 구분할 수 있는데 우리 정치는 국민의 기대수준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

야당 역시 국민적인 신뢰를 상실하고 위록지마의 정치를 연출하고 있다. 지금도 정상이 아닌 비정적인 비상 대책 임시 지도부가 당을 이끌어 가고 있지 않는가. 시대정신과 국민은 저 만큼 앞서 가는 데 아직도 새 정치 연합은 계파적인 파벌의 정치나 거리의 정치를 민생 정치로 오해하고 있다. 친노와 비노라는 대결구도가 선명성을 위장하여 당의 진정한 개혁 목소리를 가로막고 있다. 오죽했으면 원외의 당 중진 김부겸이 야당의 현주소를 `동네 조폭들의 영토 싸움`이라고 비난했을까. 야당은 아직도 정당의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한 체 수권 정당임을 자처하는 형국이다. 더욱이 야권 연대의 한 축이었던 통합진보당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의해 해산 당했다. 그들은 북의 인민민주주의를 수용하면서 `진보적 민주주의`로 위장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러한 야권의 시행착오는 정당에 대한 신뢰위기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로 인해 2014년 우리 정치는 임기응변식 정치, 좌충우돌 식 정치의 수렁에 빠져 버렸다. 그러면서도 여야가릴 것 없이 정치인들의 권력자에 대한 줄서기 정치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권력핵심에 대한 충성심 경쟁은 사슴을 말로 오인토록 하는 지록위마의 정치를 재현할 뿐이다. 결국 권위주의적 리더십, 독단적인 리더십은 고독한 지도자의 눈을 가리는 위선의 정치를 자초할 수밖에 없다. 벌써 권력의 누수나 레임 덕 현상이 권력핵심부의 분열에서 시작되었다고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 2015년 새해에는 우리 정치가 위선의 정치, 위록지마의 정치를 청산하고 다시 희망의 정치, 신뢰의 정치를 되살리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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