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러시아에서 만난 북한 노동자들

등록일 2014-12-22 02:01 게재일 2014-12-22 19면
스크랩버튼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몇 해 전 학술회의 관계로 러시아 연해주 일대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겨울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은 영하를 28도를 오르내리는 추위가 몰아치고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얼어붙은 연해주 내해도 밟아 볼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이 학술대회를 마치고 도착한 숙소는 블라디보스톡 근교의 어느 학교 기숙사였다. 우리는 그 학교 내에서 도로 보수 공사를 하는 노동자 2명을 마주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들이 러시아의 고려인이거나 중국 조선족 노동자로 알고 지나치려 했으나 그들이 우리에게 먼저 말을 걸어 왔다. `남조선서 왔수?`우리는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북한에서 온 노동자라고 신분을 밝혔다.

그날 저녁 그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과거 북한군 장교 출신이라고 소개하면서 해외 근로 사업이 `당과 조국을 위한 사업`이라고 자랑까지 하였다. 그들은 대부분 집단 합숙 생활을 하지만 이 학교의 작은 공사를 위하여 2명이 파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행색은 매우 초라했으며, 하루 종일 노동일에 시달려 지친 모습이 측은하기 까지 하였다. 그들은 러시아의 딱딱한 빵과 값싼 보드카로 연명하면서 러시아의 추운 겨울을 지내고 있었다. 우리 일행에게 그들은 경계심을 늦추지도 않으면서 그들의 초라한 움막 같은 숙소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 겨울 러시아의 추위 속에서 고생하던 북한 노동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은 알 길이 없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북한 식당이 여러 곳 있다. 우리 일행이 찾아간 북한 해당화 식당도 여러 명의 북한 여성 종업원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이들 역시 외화벌이에 나선 북한 여성 노동자들이며 책임자의 지휘 하에 엄격한 통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해외의 북한 식당은 어느 곳이나 평양식 냉면과 불고기, 식혜 등 거의 동일한 북한식 메뉴가 준비되어 있다. 어딜 가나 현지 음식보다 훨씬 비싸지만 남한의 관광객들이 호기심으로 많이 찾는 곳이다. 우리일행이 식사 후 평양이 고향이라는 종업원에게 언제 북한으로 언제 돌아가느냐고 물어 보았다. `장군님이 부르셔야 조국에 갑니다.` 의외의 대답이었다. 어느 일행이 10달러를 봉사료로 주니 `우리 공화국 이런 것 없읍내다`하고 단호히 거절하였다.

김정은 정권 등장 후에도 러시아 중국, 중동 등 40여 개국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는 5만~6만 명에 이르고 북한 노동자들로 부터 거둬들이는 수입이 연 2조 원이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러시아에 파견된 약 2만 명의 북한 파견노동자의 임금 역시 보잘 것 없다. 현지 고려인들은 그들의 월급이 100달러 정도라고 우리에게 귀띔해 주었다. 북한의 해외 노동자들은 어딜가나 전체 임금의 60%를 국가 계획 납부금, 30%정도를 충성 자금과 단체 비용 명목으로 공제하고 겨우 10% 정도만 임금으로 수령하고 있다. 이러한 데도 북한의 해외 노동자들은 늘어나고 있다. 북한의 아직도 계속되는 `고난의 행군`이 이들을 시베리아뿐 아니라 중동 노동현장까지 내몰고 있는 셈이다.

북한 노동자들의 해외 근로는 이처럼 보수만 열악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임금을 상납으로 착취당하면서도 해외 노동 현장에서도 보위부 요원들에 의해 엄격히 통제된 생활을 강요받고 있다. 얼마 전 러시아 공사판에서는 밖에서 잠가버린 열쇠 때문에 5명의 북한 노동자가 일상화 탄소에 질식사한 참극이 있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몇 해 전에는 시베리아 벌목 현장에서 모스크바로 탈출한 북한 노동자의 참상이 다큐화 되어 방영되어 우리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지는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들은 북한 정권의 노예와 같다”는 보도를 하였다. 이제 우리도 러시아뿐 아니라 중국, 중동, 아프리카 등지의 북한 노동자 문제의 심각성을 인권 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시론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