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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생에서 남편 피하는 법이 있을까

등록일 2014-12-12 02:01 게재일 2014-12-1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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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신 로타리코리아 상임고문

얼마전 통계청이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하겠는가”라고 물었다. 남자는 43.6%가 하고 싶다는 답을 내놓은 반면 여자는 44.8%가 “해도 좋고 안해도 된다”는 심드렁한 답변을 내놓았다. 나이 들수록 젖은 낙엽처럼 찰싹 달라붙는 남편을 두고 늙은 아내는 기겁할 일이다.

종종 사람들이 묻는 말이긴 하지만 배우자를 보는 시각에 따라 애꿎은 질문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박완서의 단편 `너무도 쓸쓸한 당신`에서도 입만 열면 도덕책 같은 소리를 되풀이해 넌더리를 내던 아내는 딸이 대학에 들어가자 딸의 뒷바라지를 핑계 삼아 서울로 가 별거에 들어갔다. 은퇴 이후에도 연금을 꼬박꼬박 받으면서도 남편을 찾지 않았다. 많은 아내들이 벼른다. “한번 늙어만 봐라”고.

부부의 인연법에 대해 원불교의 창시자인 소태산(1891~1943) 대종사의 해법이 가장 가슴에 와닿는다. 그 시절에도 그런 부부가 있었던 모양이다. 대종경을 보면 부부사이가 늘 나빴던 그는 남편을 미워하고 “다음 생엔 부부의 인연을 맺지 아니 할 것이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 말을 들으신 소태산은 “그 남편과 인연을 맺지 아니하려면 미워하는 마음도, 사랑하는 마음도 두지 말고 오직 무심(無心)으로 대하라”고 일러주었다.

일상에서도 미워하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의 옆자리가 잘 비워 있는가 하면 출근길 차 속에서도 자주 마주친다. 이걸 해결할 길을 찾지 못해 “저 인간만 마주치지 않으면 좋겠는데”하는 마음을 먹으면 미움을 사는 일을 덧칠을 하는 셈이다.

석가모니를 연원불로 한 소태산의 진단은 예상 밖이다.

참회(懺悔)가 아닌 무심(無心)이었다. 소태산은 인연 농사를 잘 지을 것을 강조했다. “너와 나의 선 긋기는 거리를 더 늘이는 방법이다” 그럴수록 선의 두께만치 인연의 두께가 쌓이는 것. 소태산은 대종경선외록(大宗經選外錄)등 여러 곳에서 미워하는 인연일수록 `밧줄로 둘을 묶어 버리게 된다`고 강조하셨다.

소태산의 설법자체는 흥미롭다. “미워하지 말라거나 좋아하도록 노력해 보라”가 아니고 무심으로 만나는 거여서 실제 사용하기에도 거부감이 없다. 무심은 마음 작용은 되지만 미움이란 마음 찌거기를 남기지 않고 시공(時空) 속으로 흘려보내는 것이다. 마음을 자유롭게 쓰는 방법이 법구(法句)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사이 자유로운 명상(冥想)수련으로 이름을 날린 마음수련원 창시자 우명 선생은 “인간의 집착은 마치 좋은 장면으로 사진으로 남겨 영구보존을 하려는 것처럼 집착으로 남는다. 이 집착을 버리는 것이 가장 급하다”고 말씀하셨다.

2천500년 전에 다녀가신 석가모니는 “세상에 살면서도 집착을 놓아버릴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만이 열반(涅槃)의 가치관(價値觀)을 증득(證得) 할 수 있다”고 설법했으니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의 마음은 늘 재색명리를 찾기 위해 번뇌스런 삶을 살았던 모양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생명의 생사(生死)를 윤회로서 파악, 생명의 인연(因緣)은 자신의 행위 결과에 따라서 나고 죽는 일을 반복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 윤회사상은 불교 뿐 아니라 힌두나 자이나(Jainism)교의 근본 교설(敎說)이기도 하다.

밥 한 그릇도 지을 줄 모르는 남편일수록 나이 들면 아내 곁에 젖은 낙엽처럼 찰싹 달라붙으니 늙은 아내는 기겁할 일이다. 부부를 끌어당기는 고무줄은 탄력이 좋을수록 더 좋다.

50대 백수가 흔한 요즘 같은 세상을 잘 헤쳐나가려면 남편이야말로 아내 뜻과 크게 다르지 않는 생활을 위해 굽혔다 폈다가 자유스러운 유연성을 40대부턴 길러야 할 것 같다. 말년이 춥고 고달프지 않는 길을 미리 찾아 두는 것도 인연농사를 잘 짓는 법이다. 이 칼럼이 신문에 나면 나의 아내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벌써부터 입가에 웃음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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