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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민원 창구 `영포목우회`

등록일 2014-12-11 02:01 게재일 2014-12-11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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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이석수가 남기고 싶은 이야기
▲ 이석수 전 경북도 정무부지사

지난 2010년 7월에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일이 하나 터졌다. 당시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민간인 사찰을 했다는 의혹이 나온 것이다. 특히 야당은 이와 관련, 포항 출신들을 몰아세웠다. 이모 공직윤리지원관 등 포항출신들이 국정농단을 했다며 연일 정부와 여권을 물고 늘어졌다. 여권에서 악의적인 정치공세라며 맞섰으나 역부족이었다. 이를 지켜본 포항출신 출향인들은 물론 포항시민들은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급기야 전국 신문과 방송 등에서 `영포게이트` `영포회` `영포라인`에 이어 `영포목우회`를 거론하며, 이들을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으로 오도하고 매도하기까지 했다. 포항인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지만 국민여론은 차가웠다. 결국 이 일로 대통령을 배출했던 포항이 국민들에게 마치 불법사찰을 일삼는, 불순하고 파렴치한 집단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고, 포항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모래 섞인 밥을 먹으며 포스코를 세워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이끌었던 포항시민들은 명예와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당시 필자를 비롯하여 뿌리회 등 지역시민단체들은 일부 정치권의 악의적인 포항 매도에 단단히 화가 났다. 더이상 포항 매도를 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성명서 발표에 이어 야당 당사를 항의 방문하고, 한 중앙지에 포항의 분노를 글로 싣기도 했다. 사실 포항과 민간인 사찰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마녀사냥의 표적이 됐던 영포목우회는 2010년 사단이 나기 15년 전인 지난 1985년 10월 영일과 포항 출신으로 중앙부처에 근무하는 사무관 이상 공무원들이 만들었다. 회원 상호간의 친목과 우의를 도모하고, 더불어 고향발전에 기여하자는 취지로 창립했던 것이다. 이 모임의 초대회장은 필자가 맡았고, 이어 최주영 전 건설부 도로국장, 박명재 현 국회의원, 박승호 전 포항시장 등이 회장을 맡았다. 이렇게 수구초심의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된 영포목우회를 야당은 느닷없이 국정을 농단하는 파렴치 집단으로 둔갑시켜 향토출신 공직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서울에는 예나 지금이나 중앙부처에 근무하는 전국의 230개 지자체 출신들이 대부분 향토 출신별로 구성된 모임을 두고 있다. 동향출신 공직자 모임은 허다하며, 영포목우회는 그중 한 모임에 불과했던 것인데, 야당은 엄청난 화력을 쏟으며 초토화시켰다. 영포목우회는 그때 너무 큰 상처를 받아 아예 활동을 중단했고, 아직도 재정비가 이루어지지 않은 실정이다. 초대회장으로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당시 영포목우회를 탄생시킨 가장 큰 배경에는 고향에서 올라오는 민원을 처리하는데 도움을 주는데 있었다. 이러한 활동은 영포목우회가 창립되기 5~6년 전인 1970년대 후반부터 이루어졌던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1972년부터 1988년까지 16년 동안 포항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고 강신우 삼일회장도 영포목우회 탄생에 영향을 주었던 분이다. 강 회장이 포항상의를 맡은 이후 중앙부처로 가져오는 고향민원이 날로 늘어났고, 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고향출신 공직자들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생겼다. 그래서 각 부처 사무관급 이상이 고향민원에 대해 행정적인 안내를 하자는 마음이 모아지면서 영포목우회가 태동했다. 당시 고향민원은 대부분 건설부, 상공부, 농수산부, 문화공보부 관련 소관이었다. 강신우 회장이 고향민원을 처리하기 위해 상경하던 초기만 해도 필자가 이를 받아 각 부처에 근무하는 향토출신 공직자들에게 다시 안내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고향민원이 점점 늘어나면서 혼자서 감당하기가 버거운 상황이 되면서 건설부는 필자, 총무처 박명재, 상공부 이상원, 농수산부 이기해, 문공부 이상용 등이 민원을 나눠 분담해 소위 `고향 관련 민원창구` 역할을 했다. 고향민원 중에서 가장 많았던 것은 해외건설 취업관련 민원이었는 데, 1970년 말에서 1880년대 초까지 대략 600여건에 달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돌이켜보면 당시 포항 영일 출신 사무관 이상 영포목우회 회원들은 오직 고향발전에 힘을 보탠다는 목적 하나였고, 뜻이 모아져서인지 의지도 대단했으며, 성과 또한 많았다. 각 부처 예산에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그걸 어떤 식으로든지 고향 포항에 내려보내려고 애썼다. 이런 것은 다른 자치단체 출신도 다 마찬가지였으니 그게 문제될 건 없었다. 상호 업무협조와 고향에서 올라오는 민원을 올바르게 처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된 영포목우회. 하루빨리 기력을 되찾아 제자리로 돌아왔으면 한다. 경북매일신문이 2015년 1월 16일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재경포항출향인 신년교례회를 개최한다고 하니 아픈 과거는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고향발전을 위해 함께 모이길 간곡히 당부드린다. 글로벌 철강경기 침체로 지금 포항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대들의 지혜 하나라도 아쉬운 마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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