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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종교화한 북한식 사회주의

등록일 2014-12-01 02:01 게재일 2014-12-0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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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버트란트 러셀이 신을 부정하는 공산주의와 기독교 사상의 유사성을 비교하여 우리의 관심을 모았다. 기독교는 현세적 가치보다는 `안락한 천국` 공산주의는 `계급 없는 사회` 건설을 약속하고 있다. 공산주의 원조 칼 마르크스는 공산사회를 `계급도 없고, 눈물도 없는 유토피아`로 설정한 적이 있다. 이러한 공산주의에 대한 실험은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에서 출발하였지만 지구상 어디에서도 성공을 거둘 수는 없었다.

북한 땅에서도 공산사회 건설을 위한 `수령론`이라는 신화는 오늘도 재현되고 있다. 북한의 수령 절대론은 기독교 교리의 유일 신앙체계를 모방하고 있다. 북한에서 말하는 수령의 절대적 지위는 기독교의 하느님이나 예수님의 위상과 흡사하다. 북한의 모든 주민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혈연적인 생명을 수령과 결합해야 완전한 정치적 사회적 생명으로 재생된다는 것이다. 수령은 뇌수이고 인민은 몸통이라는 것이 수령론의 핵심이다. 이는 기독교에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하느님의 온전한 자녀가 된다는 논리와 매우 유사하다.

최근 북한 방송은 젊은 수령 김정은의 말씀을 원로 수행원들이 받아 적은 모습을 연일 공개하고 있다. 기독교의 신약이 예수님의 언행을 기록한 책으로 존중되듯이 북한에서는 수령님의 교시나 지시가 당의 최우선 방침으로 하달된다. 수령님의 지시는 수행원들이 빠지지 않고 수첩에 기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수령님의 교시는 모두 절대화되고 신성시되어 주민들이 지켜야할 공식적 규범이 되고 있다. 또한 수령님의 교시는 북한의 문학, 영화, 노래 등 각종 예술작품에서도 종자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 모든 주민들은 주기적으로 `생활총화`을 통해 자아비판 시간을 갖는데 이는 기독교의 죄를 고백하는 고해성사나 간증시간과 흡사하다.

북한에서 각종 행사시의 좌석 배치 순서나 수령님의 현지 방문 시의 수행 빈도는 권력의 서열을 상징한다. 마치 예수님이 제자들과 동행하듯이 북한에서도 측근들이 수령을 항상 근접 수행한다. 예수님은 제자 중 배반자 가론 유다와 베드로의 죄까지 용서하지만 북한에서는 수령 눈에 벗어나는 인사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히 응징한다. 수령의 고모부 장성택까지 현장에서 체포되고 처형된 것은 이를 잘 입증한다. 예수님을 충실히 믿고 따르면 구원 받듯이 북한에서는 절대자 수령을 믿고 따르면 명예와 특권을 보장받는다.

북한의 신격화한 수령은 당 중앙 위원회나 대표자 대회 등 각종 집회에서 참석자들의 기립 박수로 열렬히 환영받는다. 수령의 현장 출현은 기독교의 부흥회나 기도회에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과 같은 감격스런 순간이다. 김일성 김정일 동상 앞에서도 눈물짓는 주민들은 생시에 수령을 직접 영접하는 것은 일생일대의 영광이 될 것이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시 호산나를 외치면서 환영하던 유태인처럼 수령은 어디에서나 인민들의 메시아로서 환영받는다. 북한 수령님의 두 차례 장례 행렬에서 절규하는 평양시민들의 눈물을 이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북한주민들이 수령의 사진을 가정과 거리에서도 공경하는 모습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어딜 가나 공경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북한의 구성원들은 모든 업적과 영광을 수령님께 돌리고 있다. 기독교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면 복된 천국을 약속받듯이 북한주민들은 수령님의 말씀에 충실하면 지상의 낙원에 들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 땅에서 수령의 교시를 열심히 따르는 주민들의 `고난의 행군`이 끝나지 않음에 있다. 이를 위해 기독교인들이 현세의 사탄의 유혹을 물리쳐야 하듯이 북한에서도 타도 대상인 사탄을 설정하고 있다. 그것은 북한 내부의 반혁명 분자나 남조선 당국과 미 제국주의가 되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정치 종교인 수령론이 언제까지 갈지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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