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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 유감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11-24 02:01 게재일 2014-11-2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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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내가 책 사는 주기는 느려질 것이다. 도서정가제 때문이다. 사두면 좋겠다 싶은 것은 정가제 시행 전 대폭 세일하는 기간에 마련해두었다. 하지만 느려진, 책 사는 주기를 평소대로 회복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귀차니즘`과 친구인 나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는 것보다 집안에 편히 앉아 클릭 몇 번으로 책을 사는 쪽을 선호한다. 당분간 옛날만큼의 할인폭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 때문에 인터넷에서 책 사기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책을 사는 게 여전히 `편리하고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도서정가제 시행의 가장 큰 명분은 `동네 책방 살리기`이다. 그간 대형 인터넷 서점들은 높은 할인율과 무료 배송이라는 매력적인 마케팅으로 그나마 열악한 대한민국 독서 시장을 휩쓸다시피 했다. 동네 서점들은 소리 소문 없이 문을 닫아 나갈 수밖에 없었다. 계란과 바위의 싸움에서 당국이 계란 편을 들어주기로 한 모양이다. 하지만 계란이 타조알 된다고 바위를 이길 수 있는 건 아니다.

15퍼센트 이내로 도서 할인율을 제한한다지만, 편법은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다. 대형 인터넷 서점들은 간접할인이라는, 자신들이 쓸 수 있는 모든 패들을 동원할 것이다. 카드·통신사와의 제휴, 마일리지 지급율 인상 및 다양한 적립금 이벤트, 매혹적인 경품 잔치, 여전한 무료 배송 등을 내세워 기존의 고객을 유지·확보하게 될 것이다. 제자리로 돌아간 만큼의 책값 이익은 영세 출판사나 동네 서점까지 가닿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동네 책방 살리기라는 명분은 무색해지고 만다.

도서정가제 시행의 `속 깊은 뜻`을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책이라는 문화적 특수 공산품의 할인율을 당국이 설레발치며 규제한다는 게 어쩐지 맞지 않다는 생각뿐이다. 규제해서 약자나 소비자가 덕을 볼 수 있으면 좋은 시스템이지만, 규제해서 강자가 덕을 보거나 모두가 부담을 느끼는 시스템이라면 문제가 있다고 본다. 아직은 지켜볼 단계지만 도서정가제가 본래의 취지에 가닿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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