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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즙 파동` 재현되는가?

등록일 2014-11-18 02:01 게재일 2014-11-1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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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의호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

수능 시험이 치러지면서 내년도 대학 입시가 막이 올랐다. 수시모집은 이미 시작됏지만 정시모집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수능시험의 결과는 모든 학부모의 절대적인 관심이다.

시험시간에 비행기의 이착륙을 금지하는 국가는 한국뿐이라는 외신보도가 있듯이 한국의 대학 입시에 관한 관심은 절대적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수능문제 오류로 떠들썩 하다. 작년 수능문제 오류가 법원에 판결까지 가서 오류가 인정되고 학생들이 구제된다고 한다. 이제 법원 판결로 오류가 인정됐으니 앞으로 수능문제 정답을 둘러싼 시비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오류로 인한 법정판결로 가장 유명한 사건은 1965년 중학입시였고 일명 `무즙 파동`이라고 부른다.

필자는 이 무즙 파동의 당사자였다. 당시 중학교도 전국적으로 모든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라고 부름) 6학년 학생들이 시험을 보아야 했다.

기억이 바로 어제 같은 무즙 파동의 단초를 제공한 문제는 `엿을 만들 때 엿기름이 없다면 무엇을 대신 사용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였다.

많은 학생들이 `무즙`이라고 답을 했다. 그러나 교육부가 발표한 정답은 `디아스타제(diastase)`였다. 디아스타제는 엿기름과 무즙에 공통으로 들어있는 효소의 이름이다.

이 문제는 곧 엄청난 학부모들의 항의를 가져왔다. 당시는 중학교에도 철저하게 순위가 있어서 일류중학교에 자제를 보내는 것이 생사를 건 싸움이었던 시절이었다. 일류 중·고등학교가 일류 대학을 보장한다는 일류 지상주의의 산물이었다.

학부모들은 이 문제를 가지고 소송을 제기 했다. 필자도 당시 정답을 `무즙`으로 적었고 지금도 무즙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과가 없으면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서 귤이나 오렌지라고 답을 해야지 비타민C라고 답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논리와 같다.

결국 법원은 학부모의 손을 들어줬다.

이 과정에서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학부모들이 무즙으로 만든 엿을 들고 와서 재판장에게 그 엿을 던진 사건도 일어났다. 당시 엿을 던지면서 “무즙으로 만든 엿”이라고 외쳤다고 하는데 이러한 학부모들 가운데는 정치적인 실력자도 있었기에 법원도 무시하지 못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하여튼 학부모들이 승소하면서 전국적으로 중학교 합격생의 대이동이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일류 중학교의 입학생 이동은 어느날 갑자기 친구들이 사라지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친구들이 갑자기 다른 중학교로 갔을 때 남은 친구들의 허탈감은 대단한 것이었다. 결국 3년 후 중학 입시에 창칼파동이 일어났고 중학 입시는 폐지됐다.

65년도 만큼의 위력적은 아니었지만 50년 가까이 지난 작년 유사한 소송 사건이 대학입시에서 일어났고 여러 학생들이 구제된다고 한다. 금년도에도 다시 이러한 소송이 재현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도대체 입학 시험문제로 소송을 거는 이러한 현상은 왜 일어나는가?

필자는 대학 서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학의 클러스터(cluster)화`를 오래 전부터 주장해 왔다.

미국에서는 대학에 갈 때 꼭 어느 특정대학을 고집하지 않는다. 하버드, 스탠퍼드, MIT, 예일, 프린스턴 등 소위 일류 사립대학은 하나의 거대한 클러스터를 형성하면서 어떤 대학을 가든 괜찮다라는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주립대학들도 버클리, 일리노이, 미시간, 플로리다 등 우수한 수십개의 주립대학들이 클러스터를 형성해 학생들이 자유롭게 대학을 선택할 수가 있게 되어 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개념이 정착된다면 대학서열화와 이로 인한 지옥으로 대변되는 입시현상, 그리고 문제오류 소송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공계의 포스텍, 카이스트, 서울공대의 클러스터 형성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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