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주말 오후 TV을 보다가 채널 문제로 부부간 언쟁을 한 적이 있다. 나뿐만 아니라 이런 가정이 더러 있는 모양이다. 나는 뉴스와 시사 해설에 관심이 있는데 집사람은 드라마와 건강 프로그램을 좋아하니 어찌 하겠는가.
그날 언쟁의 발단은 어느 종편의 성형 수술에 관한 토론 프로에서 출발하였다. 어느 성형의사는 대뜸 `어머니 날 낳으시고, 원장님 날 만드시니`하는 멘트를 날렸다. 성형외과 원장의 이러한 성형 유도성 멘트에 나는 기분이 몹시 상했다. 그날 출연한 패널들의 무분별하고 편파적인 주장은 점입가경이었다.`성형 미인은 면접 시에도 절대 유리하다`, `인물 잘난 사원은 실수를 해도 책임추궁을 당하지 않는다`, 심지어 `인물은 개인 연봉과 직결 된다`는 주장까지 별별 희한한 주장까지 이어졌다. 모두 성형을 부추기는 주장에 나는 채널을 바꾸자고 했다고 부른 화근이다.
성형 자체를 나무라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욕망은 본능이고 누구도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성형 미인이라도 미인만 되면 대접받는다면 누가 성형을 하지 않겠는가. 방학만 되면 성형하겠다고 예약한 학생들이 줄을 서있다는 난감한 소식까지 들린다. 중국 동남아 등지의 여성들이 성형을 위해 한국을 택한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한국의 앞선 성형 기술이 국가적으로도 수입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인들의 성형 열풍의 그림자를 생각하니 이러한 경박한 풍조가 두렵기까지 하다.
성형 만능 사회는 한국인들이 내용이나 실질보다는 겉모양과 형식을 선호하는 결과의 산물이다. 이러한 형식주의 문화는 여러 측면에서 부작용을 초래한다. 우리 한국인들이 비교적 옷을 잘 입고, 차량의 겉모양을 깨끗이 하고, 집의 내부 보다 외형을 꾸미고, 간판을 크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 사회의 과도한 결혼 비용도 허례적인 행사도 모두 형식주의적인 겉치레 문화, 체면 문화의 소산이다. 최근 대학 입시의 봉사 활동 성적까지 형식적으로 조작된다니 어안이 벙벙하다. 가짜 봉사활동 증명서, 논문 부풀리기, 심지어 학력 부풀리기 등도 모두 겉치레 문화가 초래한 비극이다.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 아직도 세월호 사건도 이러한 형식주의 문화가 초래한 참극이다. 팽목항 앞 바다에 수장된 세월 호라는 배도 겉은 멀쩡하지만 배의 내부는 아예 곪아 터져 있었다. 조사 과정에서 일부 나타났듯이 규정을 무시한 불법적인 배의 개조, 고정 장치도 하지 않은 무리한 화물 적재, 선장까지 임시 대리로 고용한 엉터리 운영 체계, 모두가 고질적인 `대충 대충`이라는 관행과 문화가 초래한 비극이다. 여기에 더하여 형식적인 통관 절차, 인허가 관청의 눈감아주기, 구호 과정에서의 허위 보고에 이르기 까지 사고의 원인은 형식과 허위로 점철되어 있었다. 세월호 참사는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곪아 터져 일어난 필연적 결과이다.
이처럼 겉모양과 형식만 중시하는 세태에서는 정직과 진실이라는 도덕성이 뿌리 내릴 수 없다. 반복된 성형 수술이 얼굴을 망치듯 겉을 중시하는 겉 치례 문화는 가짜가 판을 치게 한다. 여러 해 전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하면서 좌우로 흔들면서 어느 여가수가 인기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형식주의적 표리부동의 허위 문화는 오래갈 수 없고 사회의 불신과 갈등만 조장 한다.
한국인들이 내용과 실질 보다는 높고 크고 거창한 것만 선호할 때 정직한 선진문화는 창출될 수 없다. 우리의 형식주의적 허영적인 의식들이 공동체의 건전한 규범을 상호 파괴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도 내용과 실질을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우리한국의 위상과 품격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서라도 형식주의 문화를 청산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