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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암

등록일 2014-11-07 02:01 게재일 2014-11-0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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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신 로타리코리아 상임고문

한국의 늦가을은 유난히 아름답다. 아침녘 운제산 자장암의 단풍은 별보다 더 반짝이고 늦가을 햇살은 비단결처럼 살갗을 간질인다. 바람이 한번 스칠 때마다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단풍의 행로(行路)는 진정 시어(詩語)같고 몸을 굽혀 낙엽을 주어보니 수정 같이 반짝이는 이슬이 묻어 있다. 생명의 순환(循環)이치를 떨쳐 버리지 못하고 이별을 두려워하는 이의 한 방울 눈물 같다고나 할까.

해발 600m 운제산 벼랑에 걸린 자장암에의 범종소리는 위로는 산마루 하늘까지 사무처 울려 퍼지고 아래로는 인간세상을 지닌 깊은 곳까지 뚜렷하게 잠기니 바로 신라 사람들이 경주 성덕대왕 신종에 새겼던 일승원음(一乘圓音)의 세계이자 무생(無生)의 지혜(智慧)를 닦는 곳이다.

자비심과 연민이 절로 솟는 암자이다.

신라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나무가 무성하고 산과 계곡이 험준해서 자장, 원효의상, 혜공 스님은 구름을 사다리로 삼아 왕래(往來)했다 해서 운제(雲梯)산으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자장암이 세속(世俗)에서 일어났던 그동안의 먼지를 털어버리고 대중 중심의 사찰로 거듭나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지난달하순 새로 부임한 주지스님(覺泉)은 숨을 헐떡이며 자장암을 오르는 절손님들을 따뜻하게 맞고는 청국장이 곁들인 점심공양(산채비빔밥)까지 내놓는다. 대중에게 다가서는 불교가 되려는 노력이기도 하지만 절 인심이 단박에 후해졌다.

오어사의 산내(山內) 암자인 자장암은 신라 진평왕(578년) 때 자장율사가 창건(創建)했고 신라 4성인(원효대사, 자장율사, 의상대사, 혜공대사)이 수도해서 일찍부터 불적(佛的)의 영험(靈驗)이 서린 유명한 기도처이다.

천자봉에서 동남쪽으로 여의주를 품은 등용이 굽이치듯 자장암으로 내려뻗은 산세로 인해 신라 당시부터 기도처로 이름났다. 지금도 석가모니를 따랐던 16제자를 모신 나한전엔 기도하는 불자(佛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자장암엔 세속인들이 잘 모르는 비밀이 숨어 있다. 오대산 상원사의 적멸(寂滅)보궁을 수시로 들락거리는 불자들조차 모르는 적멸이 숨어 있다.

사적(史蹟)을 탐사(探査)해 보면 신비스럽다. 20년 전 풋나지나윙 태국 승왕으로 부터 진신사리 7과를 기증받은 태국 유학승 정신스님이 자장암에서 심야기도 중 사리에서 등롱의 불빛처럼 은은한 빛이 쏟고 향기가 방을 채우는 불가사의한 기적이 일어나던 해(1998년, 불기 2542년)에 자장암 주지 삼현스님에게 기증, 보탑(寶塔)을 세우게 됐다고 한다.

이곳은 화엄학을 일으킨 원효스님과 혜공대사, 신라 2대 남해왕비 운제부인의 성모단의 연원 설화 등 우리 고대사에 얽힌 귀중한 얘기들을 간직한 곳이자 불교성지이다.

불교도 이제 많이 변했다. 강산이 숱하게 변하는 사이 유행도 `웰빙`과 `힐링`을 지나 `명상`으로 건너온 것이다. 자장암 역시 해발 600m의 수려한 자연을 온 몸으로 느끼며 수행과 명상을 체험하고 재충전과 치유를 얻어가는 산사로 거듭나면 더 많은 대중(大衆)이 찾을 것.

기복적(祈福的)이고 대불전(大佛殿) 중심적인 신앙은 한계에 온 것 같다. 성과주의에 매달린 중생들의 삶 자체의 균형(均衡)이 깨지고 그래서 더 힘들어하는 현대인들에게 운제산 자장암이 갖는 좋은 환경과 전통의 모습은 몸과 마음의 균형(均衡)을 추스르는 데 도움을 주는 곳이다. 새로 부임하신 각천스님은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을 나와 현대불교이론이 밝은 학승이시다. 월산 대종사 시자와 불국사 문화, 총무국장, 조계종 총무원 호법국장을 거쳤다. 자장암은 오어사 주차장에선 200m 암벽의 가파른 길을 올라야한다. 이 길이 부담스러우면 영일만 온천 입구에서 차로 3km거리에 있다.

자장암 이웃엔 오어사와 오어지 들레길, 원효암, 솔 향이 진동하는 3시간 거리의 천자봉 등산길을 비롯 대송면 산여리의 조선후기시대 도요지 등 늦가을 추정(秋情)과 함께할 볼거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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