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로 살아간다. 같은 제목의 윌리엄스 희곡은 제어할 수 없는 인간 욕망을 고양이에 비유했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에 올라가기를 좋아하는 고양이는 없다. 하지만 삶이란 무대는 만만치 않다. 욕망하는 무엇을 탐색하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판쯤은 견뎌내야 한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폴리트 할아버지의 생일 즈음, 모인 식구들은 평안과는 먼 분위기에 휩싸인다. 평생 남편에게 냉대 받으면서도 그를 사랑한 부인, 지나치리만큼 냉혹하고 현실적인 큰 아들 부부, 그들은 동생에게 거대한 아버지의 재산이 상속될까봐 전전긍긍한다. 둘째아들은 이런 상황과는 무관하게 개인적 고민으로 갈등한다. 동성애적 관심을 호소하던 절친한 친구의 죽음이 자신의 외면 때문이라는 자책에 시달리며 점점 비현실적 인물이 되어 간다. 그런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는 사랑의 결핍에 괴로워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처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 시아버지의 재산에 집착하게 된다.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처럼 스스로의 운명에 발을 동동 구른다.
삶 자체가 달궈진 양철지붕이다. 억눌리면 억눌리는 대로, 냉혹하면 냉혹한 대로, 절실하면 절실한 대로 우리는 그 판 위에서 저마다의 발바닥을 단련시킨다. 뜨거운 지붕 위에서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발바닥의 동동거림만 더해질 뿐, 좀체 벗어나기 힘든.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