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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받지 않을 권리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11-03 02:01 게재일 2014-11-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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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 관련 소식이 화제다. 미국 오리건주에서 뇌종양 말기로 힘겨워하는 메이나드라는 젊은 여성이 자신의 존엄사 예고일을 동영상에 올렸다가 다행히 날짜를 연기했다. 하지만 고통을 감당하지 못해 여전히 `존엄사`를 포기하지 않겠단다.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먹고, 좋아하던 노래를 들으면서 자신의 침대에서 세상과 작별하는 게 그녀의 바람이란다.

존엄사도 크게 보아 안락사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존엄사는 소극적 안락사를, 안락사는 적극적 안락사를 의미한다. 환자의 사전 의사가 있었다는 전제하에, 의료진에서 생명단축수단을 사용하거나 생명 연장 조치를 더 이상 하지 않을 경우를 일컬어 안락사라 한다. 위의 경우는 죽음에 이르는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행위 주체가 환자 당사자이기 때문에 주목을 끈다. 굳이 표현해야 한다면 `적극적 존엄사` 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인간답게 죽음을 맞이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죽음이 기정사실화된 가운데 극한 고통에 시달릴 경우 과연 연명 치료는 의미가 있을까. 삶이 소중한 건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삶이 죽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 이후로 부쩍 죽음의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회복 불가능한 단계에 이른 환자에게 어느 누구도 죽음의 방식을 강요할 순 없다. 죽음 직전에 감당해야할 고통 너머의 고통을 당사자 대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생명의 고귀함을 설파하기 위해 환자의 고통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다른 모든 논쟁거리를 뒤로하고 남은 자의 양심이나 도덕적 판단보다는 `환자의 고통`이 우선 배려되어야 한다는 것. 무의미한 연명치료만이라도 생명 중시라는 이데올로기 앞에서 지속되지 않을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존엄사나 안락사가 죽음의 방식으로 완벽한 모델일 리는 없다. 그렇다고 환자의 고통을 외면할 수도 없다. 생명 연장이냐 고통 완화냐 그 딜레마 앞에서 한발자국도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지만, 그래도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고통 받지 않을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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