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신 용
사람살이 떠나 풍화에 몸 맡긴 집
그 세월의 무게 못 견뎌 문짝 하나가 떨어져도, 제 팔 하나 뚝 떼어 던져주고
홀로 뒹구는 장독대의 빈 항아리, 마치 소신공양하듯 껴안고 등신불이 되는
풀들, 그렇게 풀들의 집으로 고요히 돌아가고 있는 폐가
그 폐가 앞에 서면
마치 풀들이, 설산 고행을 하듯 모든 길 잃은 것들 데리고
귀향하는 것 같을 때 있다
풀의 집은 풀이듯 데려와, 제 살의 흰죽 떠먹이고 있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잡풀들이 우거진 폐가를 지나며 시인은 선승의 묵언수행을 떠올리고 있다. 넝쿨풀은 폐가를 풀의 집으로 데려다주는 부처다. 침묵의 극점에서 남아있는 것들 하나하나 다 사라지고 사람의 기척마저 완전히 사라졌을 때 설산에서 고행하는 부처처럼 뼈만 앙상한 모습으로 가만히 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풀이라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상상하는 시안이 깊고 그윽하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