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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야 진실이다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10-31 02:01 게재일 2014-10-3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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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사보 만드는 일을 잠깐 한 적이 있다. 주경야독을 하는 십대와 이십대들이 주를 이루는 섬유업체에서였다. 어느 날 현주라는 아이가 직원란에 실릴 시 한 편을 가져왔다. 수줍은 미소로 그미가 내민 원고의 마지막은 이러했다.`언제나 아름다움이 머무는 곳, 이곳이 바로 00입니다` 구체적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회사어천가 쯤 되는 내용이었다. 집 떠나 외롭고 고달픈데 사장님이 진심을 다해 그들을 배려하고 잔정을 내니 그 또래 감성으로는 충분히 그런 시를 쓸 만했다. 그런데 우연히 가불을 하러 사무실에 들렀던 아줌마 직원이 그 시를 보더니 혼잣말인 듯 제법 큰 소리로 말했다. “아름다워야 아름답다고 하지. 쉬운 말로는 뭣인들 못할까. 월급만 올려주면 나도 그렇게 쓰겠다.”

예상치 못한 발언에 충격을 받았다. 회사에 관한 시라면 당연히 아름다움을 노래해야 한다고 생각한 내게 아줌마의 진솔한 한 방은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줌마 입장에서 보면 세상은 불편하고 불공평한 것 투성이였다. 딱히 회사 자체에 대한 불만이라기보다 사회적 상황에 대한 불만이 아줌마로 하여금 세상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자각하게 한 것이었다. 남편 없이 두 아이 키우고, 시댁 건사하고, 미래를 설계하기엔 이 사회가 결코 아름다운 곳이 못되었다. 가불하기 위해 들어서는 회사 문턱조차 얼마나 높았을 것인가.

진실은 언제나 잠자는 평화를 배반하고, 진정한 미학일수록 아름답다는 편견을 거스른다. 고요하대서 진짜 평화가 아니고, 눈을 호사시킨다고 모두 아름다움은 아니다. 제 아무리 힘들어도 천성이 선한 사람들에게 세상은 아름답고 평화롭게 보인다. 그들의 그 맘은 진심이다. 하지만 세상의 곤고함을 경험한데다 생의 이면을 보는 촉이 발달한 사람들에게 세상은 무조건 아름답거나 평화롭지만은 않다. 서정의 눈길이 앞선 이들은 아름다운 것을 더 아름답게 보려하고, 통찰의 눈이 깊은 사람들은 추함까지도 미의 범주에 담으려 한다. 진실은 추하고, 추함은 불편함을 능히 감당할 자만이 이끌어 낼 수 있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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