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영 철
집 옥상에 옮겨 심어놓고
욕심이 과했던가 보다
아침마다 물 대고 쓰다듬고 말을 붙이는데
벼는 가을이 오기도 전에 비실비실 말라가고 있었다
그 가녀린 벼에 무슨 힘이 있다고
제 몸 하나 버티기도 힘든 놈 모가지에 매달려
나는 마구 무엇인가를 애원하고 있었던가 보다
어서어서 커서 쑥쑥 밥이 되어 걸어나가라고
늦은 봄에서 여름까지 줄기차게 물 대고 말 시킨 죄
날마다 쇳덩어리 하나씩 가슴에 안긴 꼴이었을까
도시의 찌든 어둠과 불빛을 비료로 받아먹고
벼는 가을이 오기도 전에 하얗게 머리가 세고 있었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한 화자의 오랜 가슴앓이는 생명의 본질을 왜곡하고 파괴하는 도시문명의 피로, 도시의 흉년임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이 시의 흥미로운 부분은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무너지고 규격화되고 제도화돼 버리는 도시 속 옥상에다 벼를 키운다는 사실이다. 문명의 병이 깊어질대로 깊어져 잃어버린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랄까, 전근대적인 농사법으로 생명을 키우며 그것을 느껴보고자 하는 시인 정신이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시가 아닐 수 없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