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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死線)에 간 리더십

등록일 2014-10-03 02:01 게재일 2014-10-0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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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신 The Rotary Korea 상임고문

파리 등 유럽의 이름난 도시는 도로는 좁히고 시민들이 걷는 공간을 넓힌다. 우리처럼 인도에 깔린 블럭은 이가 맞지 않고 튀어 나온 곳이 없어 사람에 대한 배려가 우선적으로 시행되는 나라다. 성장제일주의에 초점을 맞춘 나라는 사람이 다니는 인도보다 도로가 더 잘 뚫려 있다. 선진국이 아니란 얘기다.

포항시내만 보더라도 그렇다. 걷는 사람이 많은 오거리, 육거리를 중심으로 어느 거리를 걸어도 이가 맞지 않고 꺼지고 파이고 블럭의 일부가 날아가 버린 현장이 비일비재하다. 이것이 우리도시의 자화상이다.

도로 상황도 마찬가지다. 연신 빵빵 거리는 운전자들, 횡단보도를 돌진하듯이 차 앞바퀴를 들이대는 운전자들, 위험스럽게 끼어들기를 하는 차량들이 거리를 메운다. 심지어 모퉁이 길이나 횡단보도에도 차를 세워둔 현장이 숱하다. 교통법규를 다 지키는 사람은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이고 조금 덜 떨어진 취급을 받는 사회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이후에 가장 바뀌지 않은 부분이 표심과 연결된 기초질서가 무너진 현장들일 것이다.

육상이 이 모양이니 여건상 감시가 덜한 해상은 더했을 것이니 세월호 같은 초대형 참사가 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눈앞에 인명이 갇힌 현장을 두고도 한명도 구해내지 못한 실상이 우리의 위기관리 시스템이다. 이런 형편없는 위기관리능력, 초대형 참사 현장을 조사하기 위한 세월호 특별법이 167일간의 입씨름 명수들의 싸움 끝에 합의를 이끌어 냈으나 앞으로 해결할 일이 산 넘어 산이다.

사후 수습에 우왕좌왕했던 정부당국과 정치권의 상황은 실패한 리더십이다.

한국사회의 리더십은 마치 사선(死線)을 가르는 것 같다. 법정에 선 세월호 선장은 팬티차림으로 승객 475명을 버리고 살 곳을 찾아 가장 먼저 탈출했다. 반면 이순신은 12척의 배로 적선 133척을 맞아 목숨을 건 해전으로 나라와 백성을 건진 역사적 사실이 500년 이란 긴 시공을 뛰어넘어서 비교되는 사회다. 영화 `명량`에 1천7백만 국민이 화답한 것이 그 답이다. 국내 최대 흥행작이 된 이유도 우리사회의 공통적 화두가 된 리더십 때문이다.

내공이 쌓인 입씨름 고수들이 위기관리 시스템이란 본질을 비켜가는 지루한 공방이었다. 눈에 보이는 현장에서 3백여명의 귀한 생명이 갇혔는데 한 명의 국민을 살려내지 못한 나라가 이 지구상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불투명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 한국의 기업문화(미국 포브스)가 참사의 원인이며 기술수준이 생각보다 떨어진다는 지적이 공감처럼 느껴지는 게 현실이다.

지난 2월 하필이면 미국 미시간호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도시 전체가 얼어붙던 날 시카고에서 열린 로타리 월드 매거진 세미나(Rotary World Magazine Seminar)에 한국로타리회원을 대표해서 참석했을 때다.

필자의 옆자리에 앉았던 유럽 로타리 대표자가 서울 얘기를 꺼냈다. “서울은 시원스럽게 트인 도로와는 달리 인도 불럭이 이가 맞지 않아 불편을 느꼈다”고 했다.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지나쳐버리는 우리와는 달리 사람들의 일상을 중요시하는 선진국 사람들이 다르다는 것을 세월호 사건이 터진 이후에야 따가운 지적이란 것을 느꼈다.

한 시대를 평가하는 일은 역사의 몫이겠으나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우리시대가 성장이란 나무만 붙잡다보니 사선을 넘나드는 사건이 잇달아 터지는 국가가 됐다는 것을 고귀한 희생을 치루고 서야 깨닫게 됐다. 민본 국가이자 초일류 나라인 미국은 리더를 인정하고 말을 아낀다. 정치인을 신뢰하고 따르는 것이 한국과는 가장 다르다. 공정한 룰이 사회를 지배하고 맘대로 고치고 적당히 봐주는 현장이 없다. 미국이 그래서 초일류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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