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이명박 정부 초기 독일에서 남북한의 학자와 소규모의 예술단이 참가한 남북공동 학술문화행사가 있었다. 이 행사에 참가한 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북한의 학자와 예술 사절단을 설레면서 맞이할 수 있었다. 남북한의 문화 사절단은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보쿰 등 여러 도시의 독일 동포 주최 문화 학술 행시에 초대되었던 것이다. 독일 거주 재외 동포들은 남과 북에서 온 사절단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독일의 여러 도시에서 성공적으로 치러진 남북의 공동행사는 프랑스에는 입국도 하지 못하고 중단되고 말았다. 당시 북한은 프랑스와는 외교관계가 수립되지 않고 통상 대표부만 있었다. 이것이 유럽에서 냉대 받는 북한의 고립된 외교 현장이다. 당시 우리 한국 공연단만이 파리에 도착하여 반쪽 행사만 치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김정은 정권 등장이후 북한은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하여 대서방 외교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북한은 일본인 피랍자 문제 조사를 계기로 일본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 대표단을 파견하는 등 대남 스포츠 외교에도 힘을 쏟고 있다.
북한의 노동당 외교비서 강석주는 독일 방문에 이어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를 방문하고 있다. 미 정부 당국자들이 2년 만에 군용기를 타고 평양을 극비리에 북미 비밀 회담을 가지고, 북한은 억류된 미국인 3명을 대미 외교의 지렛대로 삼으려고 하고 있다. 북한의 리수용 외무상은 15년 만에 유엔총회에 참석하고 유엔 외교를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대서방 친선 외교는 성공하기 어렵다. 미국이나 유럽연합은 북한의 핵 포기, 북한의 인권 문제, 남북관계의 개선을 외교적 전제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으로서는 어느 것 하나 쉽게 수용하기 힘들다. 북핵 문제는 그들 주장대로 `당당한 핵보유국의 지위`에서 협상하려는 입장 때문 포기하기 어렵다. 북한 당국은 북한에는 인권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면서 북한 인권보고서까지 제출하고 있다. 북한은 남북관계의 경색의 원인도 한미 군사 훈련 때문이라고 반복하여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서방외교는 종래의 수동적 외교가 아닌 능동적 적극적 외교를 전환하고 있음은 의미 있는 변화로 볼 수 있다.
북한 당국은 그동안 특유의 `벼랑 끝 외교` 전술을 빈번히 구사하였다. 이는 북한이 상대에 대한 도발적 발언이나 엄포를 통한 일종의 밀어붙이기식 외교 전술이다. 이러한 전술의 궁극적 목표는 대화나 협상에서 양보 없이 벼랑 끝까지 갈 데 까지 가다가 결국 상대의 양보를 얻어 실리를 추구하겠다는 전술이다. 미국은 과거 대북 협상에서 선거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여 특사를 파견하거나 양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미국뿐 아니라 서방 세계는 북한의 이러한 외교 술책을 간파한지 오래이다. 이번에도 북한 당국은 미 정부 당국자와 평양 비밀회담의 성과가 없자 CNN의 북한 억류자 인터뷰를 통해 고위급 특사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당국은 이러한 대서방 외교전술은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북한의 대서방외교가 성공하려면 북한 스스로 개혁·개방을 통한 실질적인 태도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현대의 외교는 결국 내치의 연장이다. 북한 당국의 종래의 외교적 행태와 주장만으로는 외교적 고립을 자초하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은 이러한 외교적 현실을 직시하여 국제적 관행과 상식이 통하는 정상적인 외교노선을 채택하여야 한다. 북한은 대서방 외교에 앞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우리 정부의 남북회담 제의부터 즉각 수용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