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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천행이다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8-12 02:01 게재일 2014-08-1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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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적병의 시체들을 헤치고 함대는 북서진했다. 깃발을 내리고 돛을 접었다. 물살이 함대를 목포 앞 암태도까지 데려다 줄 것이었다. (···)허기진 사부들이 갑판에 주저앉아 마른 미역을 씹었다. 새떼들이 끝없이 배를 따라왔다. 다시 거꾸로 흐르는 북서 밀물 위에서 나는 몹시 피곤했다.”

`칼의 노래` 명량해전 마지막 부분 묘사 장면이다. 흥행가도를 달리는 동명의 영화 덕인지 요즘만큼 `명량`이란 말이 회자 된 적도 드물 것이다. 백의종군하게 된 이순신의 눈에 비친 순천·여수 앞바다 정경 묘사로부터 칼의 노래는 시작된다. 볼수록 전율이 돋는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라는 문장은 내가 만난 가장 강렬한 소설의 첫 구절이 되었다. 전반부에 비치된 명량해전에 대해 작가는 무려 4장에 걸쳐 그리고 있는데, 그 어디에도 소설적 과장이나 영화적 긴장감 같은 걸 빌려 담진 않았다. 오직 객관화된 인간 이순신의 내외적 발화가 있을 뿐이다. 담담하고 냉정한 그 방식 때문에 오히려 더 절절하다. 주관이 배제된 물리적 사실을 진술함으로써 실체에 가닿으려 한 방식은`난중일기`의 문체적 특성이기도 하다.

“적선 30척을 쳐부수자 그들은 달아났다. 다시는 우리 수군에 가까이 오지 못하다. 그곳에 머물려고 했으나 물살이 무척 험하고 형세 또한 외롭고 위태로워 건너편 포구로 새벽에 진을 옮겼다. 당사도로 진을 옮겨 밤을 지내다. 이것은 참으로 천행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난중일기의 명량 전투 당일 자 마지막 문장이다. `외롭고 위태로워`라는 말이 참으로 걸린다. 이어진 날들의 일기를 보면 진도에서 싸움을 끝낸 뒤 무안을 거쳐 영광과 변산을 지나 닷새 뒤에는 군산 선유도까지 북서진해 물러났음을 알 수 있다. 군량미 확보와 배 정비의 필요성 등의 이유도 있었겠지만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장군인들 외롭고 위태롭지 않았을 것인가.

`참으로 천행이다`라는 그날의 저 마지막 문장은 우뚝한 장수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심회에 자주 젖었던 인간 이순신으로서의 참모습을 말하는 것 같아 백번 공감이 가는 것이었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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