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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울수록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8-07 02:01 게재일 2014-08-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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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라는 카피가 있는 것처럼, 때에 따라 언어보다 비언어적 요소가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상대가 나에게 호의적인지 아닌지는 말 아닌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다. 부드러운 눈빛, 밝은 안색, 다정한 손짓, 다가오는 어깨, 끄덕이는 고갯짓 등 누군가의 긍정적인 이런 리액션은 상대를 신뢰한다는 표식이기도 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말하는 관계의 가장 대표적인 범주가 식구일 것이다. 식구끼리는 공기 중에 흐르는 분위기, 거기서 파생되는 직감만으로도 어떤 상황이고 무엇을 말하려는지 서로 알 수 있다. 가까운 사람끼리의 이런 비언어적 표현을 잘 이해하면서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다. 가깝기 때문에 기대하는 바가 크고 기대하는 바가 큰 만큼 조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엄마의 표정이 우울한 건 맘먹은 대로 풀리지 않는 제 상황 때문이지 무심하게 보이는 다른 식구 탓은 아니다.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상대의 비언어적 속성에다 제 욕구불만을 투사해버린다. 누구보다 말하지 않아도 잘 아는 사이면서 말하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 것 아니냐며 예민하게 군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일수록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야 하는데 습관화된 안일함은 가까운 식구 앞에서 종종 무기가 되곤 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민하거나 예리한 시선이 아니라 섬세하거나 배려하는 눈을 지녀야 한다. 예리한 눈은 무언가를 평가하는 데 필요하다면 섬세한 눈은 상대와 교감하기 위해 필요하다. 예리한 눈이 상대의 약점을 파헤치고 상대를 머리로 훑는 것이라면, 섬세한 눈은 상대의 약점을 그러안고 상대를 가슴으로 보듬는 것이다. 사람은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교감의 대상이다. 하물며 가까운 사람끼리라면 말해 무엇하랴.

별 뜻 없는 타자의 몸짓을 내가 곡해하는 것은 내 눈이 그렇게 보기 때문이다. 타자의 약점이 크게 보이는 만큼의 내 결점이 내 등에 달려 있다. 등에 붙은 내 티끌은 나 스스로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 내가 정한 오늘의 탐구 과제이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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