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간의 긴장은 아직도 계속되고 전면적인 교류와 협상이 단절된 지 오래이다. 이명박 정부의 2010년 5·24 조치 이후 대북 전면 봉쇄조치는 현 정부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통일 준비 위원회를 발족함으로서 새로운 대북·통일정책을 구상하게 되었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제도적 장치만으로 해빙될 수 없으며 효율적인 대북 정책을 통해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남북 관계의 답답한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정부나 통일 준비 위원회가 보다 전향적인 정책변화를 경주해야할 시점이다.
분단이후 정부는 남북 당사자 간의 고위급 회담과 합의라는 `큰 걸음 정책`을 선호하였다. 과거 박정희 정부의 7·4 남북 공동 성명, 노태우 정부의 남북기본 합의서, 김대중 정부의 6·15 공동선언, 노무현 정부의 10·4 선언이 그것이다. 이 같은 큰 틀의 합의는 모두 남북 총리나 남북 정상 간의 공식적인 합의의 소산이다. 그러나 겉보기에 그럴듯한 남북 간의 합의이지만 그 실천이 따르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 결국 공식적인 정상 간의 남북 합의도 남북관계의 경색에 따라 언제라도 사문화 될 수 있음을 분단의 역사는 보여 주었다.
우리의 대북 정책도 서독의 빌리 브란트 처럼 `작은 걸음 정책`(Politik der kleinen Schritte)부터 시행해 볼 필요가 있다. 작은 걸음 정책이란 남북관계의 개선이 어려운 시점에서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대북 정책보다는 남북의 작은 문제, 실천 가능한 문제부터 해결하자는 미시적인 정책이다.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정부 당국의 큰 협상(grand bargain)보다는 작은 실질적 접근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의 정상회담이나 장관급 회담 보다는 분야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작은 접촉을 통한 변화를 모색하자는 것이다. 마침 그동안 중단된 겨레말 큰 사전 편찬위원회가 재개되고, 인천 아시안 게임 참석 회담, 황폐한 북한 땅에 나무 심기나 병충해 방제를 위한 남북 접촉이 재개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러한 작은 걸음 정책의 기본 목적은 북한에 대해 `접근을 통한 변화`를 초래하기 위함이다. 독일의 사민당의 브란트 총리는 젊은 세대의 변화 욕구를 발판으로 동독은 물론 소련·동유럽권과의 적극적 접촉을 추진하였다. 특히 동독과는 `1민족 2국가`를 표방하면서 대등한 입장에서 빈번한 접촉을 제의하였다. 그의 이러한 정책은 현실적으로 통일이 불가능하므로 동독과의 교류·협력을 증진하여 `사실상의 통일`을 달성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독일 통일 문제는 단시일에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 동독과 대결보다는 상호 방문 등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해결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이것이 후일 독일 통일의 초석이 된 것이다.
우리 정부도 이러한 작은 걸음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대북 강경 정책을 유연한 정책으로 바꾸어야 한다. 우리의 대북 정책은 때로는 원칙론적인`북한 길 들이기식` 강경 정책도 필요하다. 그러나 대북 봉쇄정책이 길어질수록 남북관계는 더욱 개선될 수 없다는 것이 분단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정부는 대북 사안별, 주체별 투 트랙(two track)이라는 유연한 전략을 구사하여 한다.
박근혜 정부는 이제 보다 신축성 있는 대북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칠 시점이 되었다. 남북 현안을 모두 비핵문제와 연결시킬 때 신뢰프로세스와 드레스덴 선언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5·24 조치도 이제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해제할 필요성이 있다. 민간 차원의 대북 인도적 지원과 남북의 문화 교류 사업도 재개하여야 한다. 오는 9월 아시안 게임을 계기로 남북의 작은 접촉이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접촉을 통한 북한의 변화가 `통일 대박`을 앞당긴다. 내년은 벌써 광복 70주년이다. 남북 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