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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8-01 02:01 게재일 2014-08-0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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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영화 `명량` 관람을 계기로 명량해전에 대한 간단 공부를 한다. 관련 다큐멘터리나 기록물이 다양하다. 밤새 영상물을 찾아보고 기록물을 검색하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전쟁사가 이처럼 호기심과 흥미와 감동과 짠함 등을 동시다발로 줄 수 있다는 것이 묘하긴 하다.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된 이순신에게 남은 건 실의에 빠진 수군과 열세 척의 군함뿐이었다. 그에 비해 진군하는 왜군함은 무려 삼백여 척에 달했다. 애초에 이길 수 없는 무모한 싸움이었다. 하지만 이순신은 이 전쟁을 필사의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죽으려는 자는 살 것이고, 살려는 자는 죽을 것이라는 각오를 몸소 실천했다.

명량해전이 승리할 수 있었던 실질적 이유가 몇 가지 있다. 그 첫 번째는 배의 구조이다. 조선의 주함 판옥선은 왜의 주함 안택선에 비해 튼튼했다. 만드는 방법과 구조의 견고성이 안택선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회전력도 우수해 울돌목의 빠른 유수에도 적응할 수 있었다. 무기의 활용 면에서도 조선해군이 유리했다. 일본군의 주력 무기는 조총이었다. 살상 무기로서 가공할만한 위력을 지녔으나 해전에서는 조선의 함포가 나았다. 천자총통을 비롯한 각종 화포는 원거리 사격이 가능한데다 화력이 우수했다. 튼실한 배와 위협적인 무기는 이순신 해군 전투력의 바탕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순신의 전략전술과 리더십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명량 일대의 해류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해 치고 빠지는 전법을 구사했다. 좁은 물목에 왜함대를 몰아넣어 옴짝달싹못하게 만들었다. 수중 철쇄를 해협 양쪽에 걸어 몰려드는 왜함을 뒤집어지게 했다는 설도 있지만 이런 기록들은 전쟁이 끝난 한참 뒤의 것들이라 믿음을 주진 못한다. 굳이 쇄사슬 전법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이순신의 지략은 여러 기록들이 충분히 검증해주고 있다. 이순신 없는 명량의 승리를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해협의 언덕에서 장군과 수군들의 승리를 고스란히 지켜보면서 응원하고 환호했던 당시 백성들의 마음이 기록으로나마 그들을 기리는 후대들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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